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85세 이상 3명중 1명은 치매환자
성년후견제도는 첫째, 의사결정의 ‘대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종전의 제도가 피후견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조차 금함으로써 피후견인의 잔존능력을 무시했다면, 성년후견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에 관해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면서, 미흡한 부분에 한해 의사결정을 지원해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있다.
둘째, 인권보장에 기여한다. 판단능력이 부족한 피후견인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할 능력이 부족해 적절한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는, 학대, 착취, 폭력, 성폭력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인권침해상태가 장기간 방치될 수 있다. 성년후견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사람의 인권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 몇 년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염전노예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이 수 십 년간 학대와 착취에 시달렸는데, 공공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보상금을 수령하고 지역사회에 복귀해 자립생활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셋째, 성년후견은 사적자치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헌법은 국가에게 신체장애, 질병, 노령 등으로 고통당하는 국민을 보호하도록 명령하고 있는 바, 국가는 다양한 후견지원을 통해 장애인 등의 삶과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백세시대를 바라다보는 지금, 성년후견은 더 이상 개인 간 사적자치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성년후견이 시행된 지 5년이 흘렀지만 아직은 그 이용이 미미하다고 한다. 이는 피후견인의 재산이나 신상에 관한 결정을 부모나 자녀가 행사하고 있고, 가족 간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법원에 후견개시를 청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가족화에 따른 전통적 가족주의 관념의 급속한 붕괴와 고령화로 인한 독거노인의 증대, 그리고 가족 간 이해충돌이 빈번해진 현대 국가사회에서는 후견제도의 적극적 활용은 불가피해 보인다.
■ 후견제도 국가차원서 접근 필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72만 명이고, 65세 이상 인구의 치매 유병률은 약 10%이며, 특히 85세 이상은 3명 중 1명꼴로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 이는 2012년 9.18%보다 증가된 것으로, 치매 환자 수는 20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예사롭게 여길 수치는 아니다. 치매환자 외에도, 발달장애,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등을 합치면 훨씬 많은 수가 되는데, 이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후견제도의 정착이 긴절(緊切)하다.
2018년 개정 치매관리법은 치매환자에 대한 기존의 ‘진료와 요양’ 대신에 ‘보호와 지원’을 통한 국가의 보호·지원 책무를 강화했다. 이는 치매는 의학적 치료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증상을 환자 본인 및 가족 등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치매관리법은 ‘치매안심병원’을 통한 전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공요양병원’을 설치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하여금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의 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해 치매환자의 후견임을 선임할 수 있도록 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는 말년에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이 부러지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한다. 그는 교통사고로 목이 부러지면서 전신마비가 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그의 이런 기도 제목은 그 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망이리라. 우리 모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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