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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유전무죄 무전유죄' 30년
  • 이욱신 기자
  • 승인 2018.10.14 16:51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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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밖은 햇볕이 따사롭게 쏟아 내리던 전형적인 가을날 일요일 오후였다. 한적한 대낮 주택가에 어울리지 않게 팝그룹 '비지스(Bee Gees)'의 명곡 '홀리데이(Holiday)'가 울려 퍼졌다. 그가 신청한 곡이었다. 일 주일 전 자신을 따르던 일당을 데리고 교도소 이송중에 탈주한 그는 어느 가정집에 침입했다가 그 소재가 경찰에게 알려지면서 집 주인 일가를 인질로 붙잡고 경찰과 대치중이었다.

그의 요구대로 TV로 생중계된 인질극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본래 '시인'을 꿈꿨다며 지난한 인생역전을 독백체로 풀어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거리로 나섰기에 변변한 학력도, 자격도, 기술도 없어서 도둑질밖에 할 수 없었다고. 남의 집에 들어가 5백56만원을 절취한 뒤 도주하다 붙잡힌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7년에, 상습·중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한다는 미명하에 전두환 군사정권이 만든 사회보호법상 보호 감호 10년을 더해 총 17년이었다. 당시 35세이던 그가 그 형량을 모두 마치면 젊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대개 20대 초반이었지만 역시 20년 내외의 중형이 선고된 몸이라 한창 왕성한 시기에 밝은 햇볕을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더욱 분노하고 절망했던 이유는 같은 해인 1988년 전직 대통령 전두환의 동생이자 새마을운동협회 총재였던 전경환이 공금 73억6천만원 횡령, 새마을신문사 수익금 10억원 탈세, 4억1천700만원의 뇌물 수수 등 일곱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고도 징역 7년에 벌금 22억원, 추징금 9억원만 선고받았다는 사실이다. 항간에 떠돌던 수백억원 횡령설을 차치하고 밝혀진 혐의만으로도 중형이 불가피해 보였는데 전경환에 비하면 잡범 수준에 불과한 자신들에게 내려진 형량이 과도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경환은 수감된 지 3년 만인 1991년 6월 가석방됐고 이듬해 1월에는 형님의 친우였던 후임 노태우 대통령 특사로 사면 복권되며 그마저도 제대로 안 채웠다.

'지강헌 사건'으로 알려진 이 탈주극은 탈주범 대부분이 체포되고 지강헌을 비롯해 마지막까지 인질극을 벌였던 당사자들이 비극적 최후를 맞으며 끝을 맺는다. 그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 한명이 동생에게 전해달라고 준 글에서 언급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표현은 정의가 아니라 권력·금전 유무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는 사법행정의 난맥상을 질타하는 말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최근 법무부와 법원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으로 구속된 최순실 등 권력형 형사범들은 다른 일반 재소자와 달리 과도한 면회시간이 부여된 '황제 면회'의 특혜를 누린 것으로 드러났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이용해 이들은 국가의 공적 활동인 재판에 성실히 응하지 않을 뿐더러 벌써부터 지지층을 동원해 사면 여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재벌 총수들에 대해서는 수백억대의 횡령·배임혐의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외없이 이른바 '3·5정찰제'(징역 3년·집행유예 5년) 판결이 내려져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이 아니라 '만인만 평등한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오는 16일이 되면 30주년이 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앞으로 30년 후에는 안 들리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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