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설립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1996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통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휴대폰 신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1986년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 등과 시작한 프로젝트로 한국 메모리 반도체를 세계 1위로 견인했다. 이밖에 많은 국책연구기관들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공로를 세웠지만 이젠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경제·통일·보건 등 여러 분야 국책 연구기관들이 같은 사안에 대해 전(前) 정부 때와는 180도 다른 연구 결과를 내놓은 데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자 정부 성향이나 요구에 따라 '연구 방향'을 바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국토연구원은 부동산 정책 실패를 덮는 '물타기 통계'를 내놨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전인 지난해 3월 연구원은 '2017 주택시장 영향요인 분석과 전망' 자료에서 "지역 시장 차별화가 심화하고 있고, 서울은 2.1%로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 1월 '2018 주택 시장 전망'에서는 "주택 매매가격 수도권 0.7% 상승, 지방 0.6%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그러나 주요 기관의 2018 부동산 예측 현황을 보면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은 1~5%대로 전망됐다.
노동연구원은 2015년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 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가 지난해 12월 다른 연구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상당한 임금 불평등 축소 효과가 있다"고 상반된 내용을 제시했다. 앞서 통계청장의 전격 교체를 두고 말도 많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계 수치로 뒷받침하기 위한 '정치적' 교체라는 의구심이 일었다. 국책 연구기관은 정권과 무관하게 본령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와 절연돼야 하는 것이다. 합리성에 기반한 객관성과 공정성이 생명임을 직시하자.
일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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