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의 선순환은 경제 활성화의 필요조건이다. 인체의 혈액순환이 잘 돼야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듯 자금이 기업·정부·가계에 원활하게 돌아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시장 상황으로 인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이 대기성 단기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비정상적 현실이다.

한국은행이 제출한 '기업경영 분석'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곳간에 쌓아놓은 자산이 59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늘고 있는 게 뚜렷하다. 기업 현금화 자산은 2009년 337조9천970억원에서 9년 동안 1.8배 늘어났다. 2013년 423조1천120억원으로 400조원을 돌파한 뒤 2년 만인 2015년(544조4천330억원) 500조원을 넘어서는 등 증가세가 가속화됐다. 증가율을 봐도 2009~2012년엔 3~4%대였으나 2013년 11.8%, 2014년 10.8%, 2015년 16.1%로 고공행진했다.

기업 현금화 자산이 급증한 2013∼2016년 증가분은 171조6천660억원이다. 이 기간 당기순이익 총합은 412조6천240억원이기에, 기업들이 번 돈의 41.6%를 모아두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사내유보금이 갈수록 늘고 있는 주된 원인은 자금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데 있다. 연 1.5%대의 저금리가 오랜 기간 이어지고,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한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자금 흐름의 고전적 '법칙'마저 흔들리고 있다. 통상 금리가 내려가면 주식형 펀드 시장에 자금이 들어와야 하지만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증시까지 힘을 잃어 MMF나 채권형 펀드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게 뒷받침하고 있다.

돈이 이렇듯 넘쳐나는 이유는 정부가 경기 부양대책으로 시중에 돈을 푼 데다 돈이 수출 및 내수산업 등 생산 활동으로 흘러가지 못한 탓이다. 당국은 단기 부동자금의 물꼬를 터주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규제를 적극 완화해 금융회사가 창조적인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길 바란다.

또한 기업의 투자 효과, 이른바 '낙수효과'가 약해지면서 대기업 중심 성장이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장과 고용이 선순환을 이루려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내수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자금이 생산적으로 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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