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경우 중앙은행, 곧 한국은행은 화폐 발행과 통화신용정책 수립 및 집행의 최고 기관이다. 금융시스템 안정, 외화자산의 보유·운용, 은행 경영분석 및 검사, 경제조사 및 통계작성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무겁고도 큰 책무가 있기에 법은 통화정책을 제대로 운용하라고 한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해야 하며, 한은의 자주성은 존중돼야 한다"(한국은행법 3조 한은의 중립성)고 뚜렷하게 규정하고 있다. 목적은 분명하다. 법으로 한은의 독립성을 보장한 것은 긴 안목으로 운용돼야 할 통화정책이 정치권력과 정부의 단기부양책에 동원되거나 휘둘리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기준금리 결정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다. 기준금리란 한 나라의 금리를 대표하는 정책금리로서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의 핵심 수단이다. 한데 한은이 독립적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지 의심케 하는 일들은 반복돼 왔다.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안종범의 수첩'도 일례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압박 때문에 한은이 금리를 인하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5년 5월 24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수첩에 '성장률 저하, 재정 역할, 금리 인하, 한국은행 총재'라고 적고 18일 뒤인 6월 11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1.50%로 인하했다"고 밝혔다.

이듬해인 4월 27일에는 안종범 수첩에 '구조조정 원칙과 방향, 양적 완화', 4월 29일에는 '한은 총재', 4월 30일에는 ‘한은’이라고 적혔다. 이후 40여일 뒤인 2016년 6월 9일 한은은 금리를 1.50%에서 1.25%로 내렸다.

김중수 당시 한은 총재는 "내리면 어디까지 내리란 말인가. 원화가 기축통화인가"라고도 했다. 그러나 3월, 4월 두 번을 버티더니 5월에 결국 무릎 꿇었다. 중장기 시계에서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지, 외압의 흐름에 떼밀린 건지 알 수 없다. 이게 사실이라면 중앙은행 독립성을 해친 심각한 일로서 당국의 엄중 조사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 당시 인위적인 금리 인하로 한국경제는 구조조정을 실기하고 좀비기업만 양산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정책범죄로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하긴 한은 독립성을 해치는 시도는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금리인상론을 제기해 예사롭지 않다. 이낙연 국무총리마저 부동산 대책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금리인상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한은 독립성을 해치는 모습이다.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로 한은과 금융통화위원회가 꾸려진 만큼 기준금리 결정 등과 관련, 충분히 수행 가능하고 타 기관에 비해 상대적 신뢰성도 높은데도 간섭하는 듯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론 한국의 기준금리가 연 1.50%로서 미국(2.00~2.25%)보다 0.75% 포인트 더 낮기에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점쳐지는 현실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실물경기가 크게 흐트러지지 않으면 금리인상 여부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11월 중 인상론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는 더 이상 상환이 어려운 한계 가계 대책 등을 포함, 정밀한 부채관리를 하길 당부한다. 금리 등 통화 정책은 한은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율'이 요청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