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또 다른 길- 물길과 철길<2>

인류사에 또 하나의 큰 발자국을 남긴 바닷길로는 실크로드의 바통을 이어받았던 교역로가 있다. 흥하면 쇠하는 때가 있고, 또 쇠락의 시기가 지나면 서서히 비상을 시작하는 게 세상사 이치. 실크로드의 운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장스님의 기행문<대당서역기>에 보면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의 중심지였던 중국의 장안은 742년경 인구가 200만 명에 이르렀고 터키, 페르시아, 인도 등지에서 건너온 외국인들이 약5,000명 넘게 상주하고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의 몰락과 함께 동서를 잇는 최대의 교역로로 전성기를 누렸던 실크로드도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송대에 이르러 중국의 정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당대에 비해 교역의 중요도는 훨씬 떨어졌다. 이슬람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게 바로 이 무렵이었다. 7세기 이후 이슬람 국가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사막길로 교역하는 일이 여의치 않게 됐다. 또 이슬람이 동서 문화의 새로운 중개자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비단길의 위세는 점차 곤두박질치게 되고 바닷길이 육로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한편 서쪽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이 교역로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십자군전쟁으로 유럽의 기독교 세력은 중앙아시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을 무너뜨린 건 기독교가 아니라 몽골제국이었다. 칭기즈칸의 지도력으로 통일을 이룩한 몽골은 강력한 기병을 기반으로 제국의 확장을 시도한 끝에 쿠발라이가 중국을 점령해 원나라 시대를열었다. 원대는 몽골과 중국의 교류 덕택에 실크로드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는 다시 부각된 시기였지만 이때부터는 바닷길도 교역로로 함께 발달했다.

원나라는 당대에 비해 문화적으로는 수준이 낮았지만 개방적인 성격이 강해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다. 훗날<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17세때 고향을 떠나 페르시아를 경유해 실크로드 남로를 거쳐 쿠빌라이의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도착했다. 원나라에서 17년을 살았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택한 경로는 중국에 올때와는 달리 해상로였다. 즉 수마트라와 인도, 콘스탄티노플을 잇는 바닷길이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실크로드가 다시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건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서면서부터였다. 육상의 교역로가 쇠퇴하게 된 건 고립적인 안정책을 선택한 명나라의 정책 때문에 교역로의 필요성이 줄어들어서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해상 교역로가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닷길은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인도양을 거쳐 중국에 도달하는 경로였다. 바닷길의 발달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은 나침반의 발명이 가져온 항해술의 발달과 선박제조기술의 향상이었다. 이 바닷길로 비단. 도자기 같은 중국 상품이 서남아시아로, 유리. 향신료 같은 서남아시아 물자가 중국으로 운반되었다.

특히 중국의 화약과 나침반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어 유럽의 근대 과학 성립에 기초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으로부터 지리학, 수학, 천문학, 의학 등의 새로운 자연과학이 전해졌고 이 영향으로 중국의 천문학자 곽수경 은 천문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하고 수시력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수시력은 당시 중국의 가장 정밀하고 우수한 역법으로 360여 년 동안 통용되었다.

이후 바닷길은 동서양의 문물을 전하는 교역로로서뿐만 아니라 유럽 제국의 영토 확장을 위한 경로로도 주목받게 되었다. 스페인의 탐험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것도 이같은 바닷길을 통해서였다.

1453년에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육로를 통한 무역이 어렵게 되자 유럽 각국들은 바닷길을 통한 무역을 대안으로 강구해 냈다. 자기나라가 먼저 해상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너도 나도 바닷길을 개척하던 시절, 스페인은 서쪽으로 가면 동양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하는 콜럼버스를 채용해 탐험에 나서게 한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콜럼버스가 어떠한 대륙을 발견하긴 했는데, 그곳은 인도가 아니라 바로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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