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향기

▲ 윤향기 문학박사. 사진=윤향기
박용래의 시처럼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만이 그 사람의 시간이다.

유행을 선도하는 최첨단도시 맨하탄 타임스퀘어에서나 세기의 사랑을 견고히 쌓아올린 인도의 타지마할 묘역에서도 자전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자신에게서 이탈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끌어내어 제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마음은 추억을 되돌릴 거리, 문명을 방어 할 거리, 슬픔을 친구 삼을 거리를 가졌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총 7부작으로 4천여페이지에 달한다. 잠들기 전 뒤척이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만 30페이지를 할애하기도 하지만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며 그 냄새로 추억을 소환하여 뺨을 부비기도 한다. 프루스트가 15년 동안 쓴 이 소설에 나오는 도시 콩브레와 발벡은 그가 지어낸 허구의 도시이다.

프루스트가 자신이 만들어낸 도시에 대해 '발벡은 내가 사랑하는 고장'이라고 해서인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는 일리에를 콩브레로 지명을 바뀌어 허구를 완벽한 현실로 만들어냈다. 이렇듯 과거의 기억과 시간을 냄새로 불러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장소애(Topophilia)로 불러내는 이가 있다.

냄새의 시간과 장소의 시간은 다른 듯 다르지 않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때론 냄새로 때론 장소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명상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싶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만 내게는 특별했던 풋꼬아리를 찾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중순이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달 여 동안 미국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펜실베니아주를 집중해서 살펴보며 다녔다.

요즘 핫 하게 뜨고 있는 브르클린 다리를 오색 어깨들과 부딪치며 풍선처럼 걸었고 브로드웨이에서는 통유리버스 'The Ride'를 타고 거리 뮤지컬에 취해 '떼' 창도 불렀으며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에 가서는 예일대와 하버드대 도서관에 들어가 고색 찬연한 전통을 감상했다.

우리가 잘 아는 명사들의 사진이 벽면에 일정한 거리로 걸려있어 특별한 시선을 느낀 곳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펜실베니아주에서는 3천800여종의 그래피티 벽화에 넋을 놓기도 했지만 정작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보배는 '랭커스타 아마쉬마을' 방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감춘 보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갖지 못하는 곳에서 아무도 도둑질해갈 수 없는 아나로그 시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상 최고 스피드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디지털 속도를 저버린 아미쉬 마을은 전기와 전화를 거부한 채 마차로 편지를 배달하며 손빨래는 빨래 줄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눈부시게 마르고 밭에서는 발전기를 매단 마차로 옥수수 수확이 한창이었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곡물연기는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졌다.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는 경쾌한 말발굽 소리는 어린 시절의 먼지 묻은 추억의 세포들을 깨워주었으며 그동안 잃어버렸던 고향으로 향한 나의 마음을 두둥둥 두드려 주었다.


■윤향기 문학박사 프로필
▲전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인. 1991년 '문학예술' 신인상 수상.
▲수필가. 2000년 '수필시대'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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