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개혁은 미래비전과 현실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 수급개시 연도의 연금액 비율)을 가급적 높이되 연금 고갈이 우려되면 마땅히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덜 받는 방향에서 결정하는 게 온당하다. 무턱대고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조기 연금 고갈을 당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개혁이 '혼미한' 상태다. 지난 1년간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마련한 보건복지부 안을 박능후 장관이 보고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문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소득보장을 강화하면서 보험료 부담 증가를 억제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묘수는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9%이며,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자를 기준으로 현재 45%이지만 매년 0.5%포인트 하락해 2028년에 40%가 된다. 제4차 재정 계산에 따르면 현행 제도가 유지되면 적자 시점은 2044년에서 2042년으로, 기금 소진은 2060년에서 2057년으로 앞당겨진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복지부는 소득대체율을 45%로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을 12%로 인상하는 방안과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면서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과 미래 여건 변화를 아우르는 차선의 대안이라는 평가다.

문 대통령의 대통령선거 공약은 현행 45%인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더 받는' 개혁안이다. 문제는 더 내자는 내용은 없다. 이제라도 그렇다면 복지부안 중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면서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방안을 채택하길 바란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보험료 낼 청년층은 줄고 수령자는 급증하는 시기에 미래세대에 무거운 짐을 지울 순 없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 후 해당연도 지출을 해당연도 보험료로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무책임하고 가혹한 결정이 아닌가.

더욱이 제4차 재정계산 전망치보다 미래 상황이 나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기금투자 수익률, 경제성장률 및 임금상승률 등 거시경제 변수가 전망치보다 저조하고, 2018년 합계 출산율이 0.97로 떨어져 제4차 재정계산에 적용한 인구 추계(2017~2029년 합계 출산율 1.20)보다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개혁이 없으면 최악의 경우 미래세대는 연금을 못 받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음을 청와대는 직시해야 한다. 당장 소수 노동사회단체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긴 역사의식을 갖고 연금개혁을 단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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