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정치권 주요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탄력 근로제는 별개 사안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 시행과 맞물린 문제다. 단위기간 동안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서도 최장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경영계는 지난 7월 300인 이상 규모 사업장에 '주 52시간' 상한의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된 이후 어려움을 호소하며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지금 산업 현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내년 1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어기는 사업장은 처벌을 피할 길이 없다. 처벌을 유예하는 6개월의 계도기간이 올해 말 끝나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소득 감소를 우려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법정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자 월급은 평균 11.5%, 금액으로는 1인당 37만 7천원 줄어든다. 기업주로선 인력 보충에 따른 인건비 증가, 납기 준수 어려움을 한꺼번에 떠안을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현행 3개월의 단위기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시간 야간노동은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할 만큼 노동자 건강을 위협한다는 논리다. 민주노총은 21일 전국 15개 지역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조합원 20만명이 참가하는 규모의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파업 관련 요구 사항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및 탄력적 근로시간제 논의 중단,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등이다. 대부분 노동관계법을 바꿔야 할 사안이다. 근로조건 및 임금·단체협약 등 개별 사업장의 노사 현안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이 2주(취업규칙) 또는 3개월(서면 합의)로 다른 선진국보다 짧다. 이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이 납품 기한을 지키기 어렵다며 애로를 호소하는 현실이다. 민노총의 반대가 명분 없음을 뒷받침한다. 6개월의 계도 기간이 끝나 2019년도부터 본격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제'는 정부 목표대로 근로시간이 준만큼 근로자의 '저녁이 있는 삶'으로 상징되는 여가 활동 등이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과 괴리되면 성과보다 후유증만 생기게 마련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 자료는 시사하는 바 크다.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기업 112곳을 상대로 제도 시행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기업들은 이 제도로 가장 애로를 많이 겪을 부서로 생산현장인 공장을 꼽았다. 응답한 기업의 55.4%(62곳)는 근로시간 단축이 인건비 증가와 영업이익 감소 등 전반적인 경영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유연근무제와 탄력근무제 확대가 불가피하다. 노동계가 이해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는 경영·노동계 양측 입장을 절충,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길 바란다. 단위기간을 늘리되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면서 임금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산업평화를 깨는 민주노총의 명분 없는 파업 계획은 당장 철회돼야 마땅하다. 경제침체기에 불황을 극복하는 골든타임을 실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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