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또 다른 길- 물길과 철길<6>

2005년 8월, 미국은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9·11테러 이후 미국인 전체가 이렇게 경악한 것은 처음이었을지 모른다. 이번의 테러는 남부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였다.

허리케인은 ‘폭풍의 신’, ‘강대한 바람’ 을 뜻하는 에스파냐어의 ‘우라칸(huracan)' 에서 나온 말이다. 카트리나는 5등급에 해당하는, 미국 기상관측 사상 네 번째로 큰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허리케인이 강타한 곳은 뉴올리언스였다. 뉴올리언스는 미국 제2의 항만도시, 세계적인 목화 생산지, 우주산업의 거점, 그리고 재즈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유명한 재즈의 선구자 루이 암스트롱도 뉴올리언스 출신이다.

리드미컬한 스윙감이 특징인 재즈는 감미롭고 아름답지만 사실 재즈의 유래는 슬프다. 세계적인 면화 생산지였던 뉴올리언스는 여기에 필요한 노동력을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들로 충당했다. 낯선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흑인들 사이에서 태동한 음악이 바로 이 재즈였다.

그러니 선율 자체가 애조를 띠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으로 초토화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남부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며 한때 번영을 누렸던 뉴올리언스는 1900년9월, 4등급 허리케인의 여파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의 사각지대인 이유는 무엇일까. 서구문명은 인간이 자연의 조건을 극복하고 살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발전했다. 서양인들은 자연이 주는 조건을 받아들이기보다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속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 바로 뉴올리언스다.

미시시피 강과 폰처트레인 호수 사이에 위치한 뉴올리언스는 70%가 바다 수위보다 1.6m에서 3m 정도 낮은 땅에 건설된 도시이다. 바닷물로부터 육지를 보호하는 제방의 규모만도 563Km 에 달한다. 또 호수와 강을 연결하는 다섯 개의 제방 가운데 네곳이 붕괴되어 호숫물이 유입됐고, 이 때문에 시의 80% 이상이 침수됐다.

제방 파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연결수로 수위는 제방보다 낮았지만 강풍으로 발생한 파도가 월류하면서 제방이 붕괴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도 있다. 이미 제방에 균열이 가있는 상태에서 수위 상승과 파도에 의한 수압의 증가로 균열이 큰 구멍으로 발전하면서 제방 붕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다.

또한 기상 이변으로 허리케인의 규모가커졌다는 점, 1930년대 이후 미시시피 강 제방 건설로 5,000Km 에 달하는 막대한 습지가 사라져 홍수 저류공간이 축소됐다는 점이다.

또한 제방을 쌓기 전에는 미시시피 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해 미세 토사가 쌓이며 주변에 습지를 형성했는데, 제방을 쌓자 범람은 없어졌지만 미세 토사의 공급이 단절되고 지하수 채취가 늘어나면서 지반이 건조해져 자체 무게로 제방 주변이 서서히 침하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 미국이 이라크 전쟁 이후 홍수방어 예산을 대폭 삭감함으로써 대비에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재난을 분명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인재였다. 1969년부터 1989년 사이 상대적으로 허리케인이 잠잠하던 시기에 남부해안지대가 마구잡이로 개발되었다. 허리케인이 닥치면 침수될 지역에 호텔과 콘도가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바람과 해일을 막아줄 수있는 모래섬과 휴양림도 사라졌다. 결국 카트리나는 자연이 가져다준 재앙이었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인간이 불러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이런 규모의 허리케인이 올 것이라는 예보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그 피해가 얼마나 클 것인가 하는 분석도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서 수없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카트리나 발생 7개월 전인 2005년 1월, 이런 대규모의 허리케인이 올 것에 대비한 종합보고서가 대학의 연구소나 전문가들에 의해 발표됐고 그 보고서가 정부기관에도 전달됐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에는 이번 재해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뉴올리언스 시를 둘러싸고 있는 제방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과 이 때문에 도시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경고가 들어있었다.

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올 것이라고도 예견했다. 안타깝게도 이 보고서의 위험 경고는 100% 적중하고 말았다. 인간이 당하는 재난은 갑자기 닥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예언된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뉴올리언스 사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에도 여러 형태의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에도 뉴올리언스와 유사한 도시가 있을까?

저지대에 위치한 서낙동강(김해시), 임진강(문산읍) 등도 제방이나 수문 등 단일 시설물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다. 뉴올리언스의 불행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 있다. 제방의 붕괴는 대규모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불러오므로 노후한 제방에 대해서는 안전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천제방을 축조해서 하천변의 습지와 홍수터를 개발용지로 제공했던 기존의 치수· 개발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환경친화적 치수사업으로 전환할 때가 온 것이다. 우선 급하게는 서낙동강, 임진강을 포함한 저지대에 대한 정밀조사를 거쳐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뉴올리언스는 우리에게 마땅히 타산지석이 되어야 할것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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