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관련된 법은 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최대한 보장,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골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소액주주 의결권 강화 차원에서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끊임없이 의무화를 요구해온 제도다. 재벌기업에서 이사를 5명 뽑을 때 현재는 개인이 5주를 갖고 있다면 이사후보 한 명에게 5주를 몰아주든지, 5명 후보에 대해 한 표씩 분산해서 나눠주고 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5명 후보 모두에게 5표씩을 줄 수 있게 된다.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다. 현재는 재벌그룹 자회사나 손자회사 경영진들이 불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해당 회사 지분이 없으면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소송 등 개입할 수 있는 방도가 생기게 돼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사익 추구 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한데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저해요소가 작지 않다는 사실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의 경우 특정 세력이 지지하는 이사 선임이 쉬워진다, 이렇게 선임된 이사들은 특정 집단이나 세력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소지가 크다. 미국·일본 등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도입했던 선진국에서조차 이를 폐지한 배경을 정부가 직시하길 바란다.

그러잖아도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공정거래법, 협력이익공유제 같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 개정이 한꺼번에 추진되면서 경제심리가 위축되고 기업의 미래에 대한 투자 의욕이 크게 저하된 상황이다. 이런 실정에서 국회에 계류된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외에 감사위원 분리선임, 전자투표제 의무화도 담고 있다. 재계는 경영권 위축 우려를 들어 반대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상법상의 경영권 방어 문제와 관련 경영권 공격자와 방어자 간 규제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전제, 공격적인 외국인 펀드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에 대해 위협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 기업 현실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를 공격하는 등 외국계 투기자본을 둘러싼 걱정이 커지고 있잖은가.

정부는 상법을 개정해도 재계 입장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확보해줄 수 있는 방안을 우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오너가 지분을 싸게 매입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설 수 있게 하는 포이즌 필과 차등 의결권 등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기업이 투자해서 성장하려는 것을 막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성장이 쪼그라들고, 투자도 위축된다. 납세도 줄어든다. 해외로 서둘러 공장이 떠날 수밖에 없다. '일자리 정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청년 실업이 느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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