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나는 절대 속지 않아."

최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패기만만한 젊은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분)은 이렇게 절규한다. 남들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으로 우리도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들떠 있을 때 그는 외국 금융회사들이 투자 자본을 회수하고 라디오 방송에서 월급 연체·사업 부도 등의 사연이 줄줄이 흘러 나오는 것을 듣고서 국가적 재난이 닥쳐옴을 직감한다.

그는 자신이 돈을 불려 준 큰손들을 불러 모아 앞으로 커다란 경제 위기가 다가옴을 알리고 이 기회를 역이용해 단단히 한몫을 챙기자고 설득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펀더멘털(Fundamental·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나타내는 성장률·물가상승률·실업률·경상수지 등 기초 경제변수)은 튼튼하다'·'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은 없다'는 정부 경제관료의 말을 믿지 그의 말에 신뢰를 보내지 않으며 떠나간다.

지난달 30일 한국거래소는 금융당국으로부터 고의 분식 회계를 했다는 판정을 받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를 기업심사위원회 심의 대상으로 올려 상장 폐지 여부 등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날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는 '주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란 입장문을 통해 "삼성바이오는 현재 현금만 1조원 이상 보유한 재무적으로 우량한 기업이며 회계처리는 적법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국회 토론회에서 손혁 계명대 회계학과 교수는 "'원칙 중심의 국제회계기준(IFRS)'은 경영 실질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경영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삼성바이오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재량권의 한계를 넘어섰다"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6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회계 투명성 평가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2000년대 중반 하위권에서 맴돌다가 IFRS 도입 기대감으로 중위권으로 상승하는가 싶더니 막상 2011년 도입 이래로 줄곧 하락해 지난해엔 꼴찌인 63위를 기록했다"고 현 실태를 꼬집었다. 좋은 제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지적이다.

순자(荀子)는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의심해야 할 것을 의심하는 것 또한 믿음이다.'(信信信也, 疑疑亦信也)고 일갈했다. 삼성바이오는 '회계기준 해석의 차이'라고 사건의 본질을 호도(糊塗)하지 말고 고의 분식 회계의 의심을 산 행위들을 반추해야 할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영화의 결말은 마지막까지 정부 발표를, 언론 보도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 윤정학의 승리로 끝났다.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며 우리 국민은 모두 윤정학과 같이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근거 없는 믿음의 주문에 응할 국민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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