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또 다른 길- 물길과 철길<7>

청계천의 물길이 47년 만에 다시 열렸다.

2년3개월의 복원공사 끝에 2005년 10월 1일, 공식 개통되었다. 복원된 청계천 5.8km 구간에는 22개의 다리가 조성됐고, 2급수 수질의 맑은 물이 흐른다. 역사 유적이 복원되고 다양한 어류와 조류가 서식하는 청계천은 이름 그대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명실상부한 도심 속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지만, 그동안 청계천 복원 문제를 놓고 정말이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교통문제와 노점상들의 생계문제, 또 만만치 않은 예산을 이유로 들어 청계천 복원을 반대하는 입장과 환경과 우리 삶의 질을 생각해서 이제라도 청계천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어쨌든 이런 시끄러운 논란을 뒤로 하고 청계천의 물은 다시 흐른다.

예전엔 종로를 ‘운종가’ 라고 불렀다. 종로는 보신각종이 생긴 이후에 붙은 이름이다. 서울이 자연 그대로의 지세를 유지하고 있을 때는 청계를 따라 구름이 낮게 깔리고 물안개가 서렸기 때문에 ‘구름 따라 가는 길’ 이라 해서 ‘운종가’ 라는 제법 운치 있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이 구름 따라 걸어가는 길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만든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된 건 1958년이었다. 당시 청계천은 이미 오염으로 악취가 심한 상태였고 큰비라도 내리면 가옥이 침수되는 시당국의 골칫거리였다.

가장 손쉬운 카드로 선택한 것이 바로 복개공사. 개천을 메워 땅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청계천 복개공사가 마무리된 후 복개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상가가 들어섰고 교통량이 폭주했다. 구름 따라 가는 길, 종로엔 구름 대신 매연만 가득해졌다.

점점 자동차의 통행량이 증가하면서, 외곽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도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7년 8월에 착공, 1971년에 완성된 청계고가도로는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의 산물이다. 복개도로 위를 지나는 청계고가도로는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당시, 성장과 개발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소개하는 책자엔 이 고가도로가 빠지지않고 소개되곤 할정도였으니. 그러나 만고불변의 가치일 것 같았던 개발과 성장은 그 후유증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또 과거엔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이 비로소 ‘삶의 질’ 이란 문제를 고민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치로의 전환을 요구받게 되었다.

말하자면 웰빙(well-being) 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복개된 청계천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독가스도, 하루도 보수공사 안 하는 날이 없을 정도로 노후한 청계고가도로도 시민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었다.

또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청계천 주변을 맑은 물이 흐르는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바꾸자는 의견들도 나오기 시작해 마침내 청계천 복원공사의 첫삽을 뜨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청계천이 물길을 다시 여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서울시가 청계천 유지에 드는 물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에 건설교통부에서는 중앙하천위원회를 열었다. 마침 필자가 위원장을 맡게 되었는데 물값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청계천 사업이 시민들을 위한 비영리사업인 걸 감안하면 안 받아야 하겠지만, 다른 선례가 문제가 됐다. 청주의 경우 부족한 무심천의 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청댐의 물 일부를 끌어다 쓰면서 물값을 내고 있으니, 청계천 물값만 안 받는다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논란 끝에 결국 물값을 안 받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선례도 중요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편익를 제공한다는 데 더 무게를 실은 결정이었다. 청계천처럼 도심 하천의 복개를 다시 뜯어내고 고가도로를 헐어내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선진 도시의 새로운 추세다.

한 예로 하천은 아니지만 미국 보스턴에서는 찰스타운(charles town)에서 노스엔드(North End) 를 거쳐 다운타운으로 빠지는, 유적으로 가득 찬 고도의 도심을 가르는 고가 하이웨이를 철거하고 그 위 엄청난 면적의 땅을 거대한 초원으로 조성하는 대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인류 근대사에서 가장 대규모 도시건설공사로 불리는 이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예산만도 150억 달러, 청계천 복원공사비 3,900억 원에 비해 엄청난 돈이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공사의 ‘형님’뻘이 될 만한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제주도의 산지천이다. 제주시 일도 1동과 건입동 부근을 흐르는 하천이었던 산지천 역시 개발주도의 정책이 한창이던 때 복개돼 그 위에 14개 동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복개구조물이 노후되어 붕괴 우려가 높다는 전문기관의 지적이 잇따르자 철거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제주시는 산지천을 옛 모습으로 되살리기로 하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나갔다.

그 결과 자연친화적인 경관 하천으로 조성해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자 이런 뜻을 전폭적으로 수용해 옛 선인들의 얼이 살아 숨쉬고 물고기와 새가 모여드는 생태휴식공간으로 복원을 추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산지천 주변 도로는 2002년 건설교통부에서 아름다운 도로를 선정할 때도 당당히 채택될 만큼 훌륭한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또한 2005년 11월엔 한국하천학회가 선정한 ‘쾌적한 하천상’ 을 수상하기도 했다.

파괴된 자연을 되살리는 데는 이처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개발을 하자면 자연 훼손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일 수 있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앞으로 가장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길을 만드는 데도 친환경적인 안목과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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