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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 440 헤르츠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일간투데이
  • 승인 2018.12.27 16:27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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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길목에 서게 되면 아쉬움과 기대감이 늘 교차되는데, 특히 정년을 1년 남긴 시점이라 그런지 애국지사라도 되는 양 이런저런 나라걱정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도 벌써 1년 7개월이 지났다. 집권 후의 1년 7개월은 지난 정부의 탓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기간으로, 남북문제를 제외하고는 민생, 경제, 교육, 고용 등 국민의 생활지수가 전반적으로 매우 낮다. 남북협력 및 평화는 인내할 수밖에 없는 문제지만 갈수록 꼬여만 가고 북한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김정은 답방을 지지율 만회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핵동결도, 신고도 거부하는 김정은이 마치 구세주라도 되는 양 너무 목을 매는 것 같다. 천천히 와도 좋으니 제발 핵시설 가동만이라도 중단한 후에 왔으면 한다. 문대통령이 받았던 격한 환대가 제공되겠지만, 시민들의 격한 반대와 일부 예상되는 격한 환영을 상상하니 착잡하다.

■ 더 가난했던 시절도 연말엔 온기가

권력을 잡으면 보복과 보은의 관행이 어김없이 이뤄진다. 보은은 왕조시대부터 내려온 유산이니 지나친 보은만 아니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보복은 이제는 그쳐야 한다. 잘못을 고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지만 확신에 기초해 상대를 적폐로 몰아세우고, 상대를 조롱하며 죽음의 궁지로 몰아넣는 것과 같은 앙갚음은 중단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또 확신은 사로잡히면 잡힐수록 진실과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만들어졌는데, 그 촛불은 보수진영의 순수한 시민들까지 폭넓게 공감한 촛불이었다. 촛불은 이를 주도한 시민단체의 것이 아니라 민주를 실현하고 법치를 세우기 위한 다수 국민의 외침이었다. 즉 우리 모두의 촛불이었다.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다수의 촛불민심을 계속 외면하다간 촛불분노를 만날 수 있음을 권력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좌회전, 우회전을 지나치게 하다 보니 직진이 어렵다. 핸들을 지나치게 꺾게 되면 자동차는 안정감이 없어 승객은 어지럽게 된다. 좌우 진영의 갈등은 심지어 ‘골프 유머’로도 나타난다. 진보 정부에서는 공무원이 페이드(왼쪽방향으로 보내되 중앙에 안착시키는 골프 용어)를, 보수 정부에서는 공무원이 드로우(오른쪽 방향으로 치는 것)를 주로 친다고 한다. 골프에서는 모두 필요하나, 거리 면에서는 드로우가 페이드보다 공을 더 멀리 보낸다.

우리는 자존감을 지켜내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수십 장의 이력서가 거절되고, 조건으로 서열이 나눠지며, 할아버지를 잘 만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지금의 상황에서,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수없이 반복되는 막연한 철지난 조언에 이골이 나 있다. 그렇다고 합당하지 않은 세상이 만든 정답에 채점돼 굴복하거나,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삶은 각기 다른 답일 뿐이지 오답이란 없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답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해두자.

■ 오늘보다 더 나아진다는 희망으로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대기업 임원승진 인사가 발표된다. 축하할 일이지만, 승진된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 옷을 벗는다. 벗진 않았지만 승진대상에서 누락된 사람은 허탈하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가진 타인을 보면서 그 인생은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필요 없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니듯, 우리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도 전부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타인의 모습, 특히 몇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 그들의 삶을 보면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모두 손상된 삶을 살고 있으며 다만 상처와 결핍의 모습과 정도가 다를 뿐이다.

요즘 연말을 보면 들뜬 기운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 가난했던 옛날이나, 덜 민주적이었던 시절에도 연말에는 춥지만 온기를 느꼈고 들뜨기도 했는데,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사회가 어두워서인지 내일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무감각하다. 그럴수록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금년보다 내년이 더 좋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로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튜닝이다. 튜닝 없는 연주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튜닝은 제1바이올리니스트가 대원들 앞에 나가면 오보에가 음을 내고 전 대원들이 이에 음을 맞춘다. 오보에는 국제표준음고인 진동수 440 헤르츠에 해당하는 음을 유지하고 있기에, 이를 기준 한다고 한다. 뉴욕·런던·베를린 필하모니도 440 헤르츠에 맞춘다고 하니, 440 헤르츠는 모든 오케스트라가 준수해야 할 표준음이다. 440 헤르츠,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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