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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둑을 잡을 것인가, 도구가 될 것인가
  • 이욱신 기자
  • 승인 2019.01.07 08:38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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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작은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짝을 뜯는 좀도둑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끈으로 꼭꼭 묶고 자물쇠를 단단히 잠궈야 한다. 하지만 큰 도둑은 궤짝을 짊어지고 작은 상자를 둘러메고 주머니를 든 채로 달아나면서 오직 노끈이나 자물쇠가 견고하지 못할까 걱정한다(<장자(莊子)> 외편 '거협(胠篋·상자를 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2015년 회계처리기준 변경에 대해 고의 분식회계라고 결론내고 검찰 고발, 주식 매매 정지, 과징금 부과, 재무제표 재작성 등의 행정 제재를 부과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회계 정의 실현은 고사하고 '도로아미타불(徒勞阿彌陀佛)'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시작은 지난해 12월 10일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가 삼성바이오에 대해 상장 적격 판정을 내리고 주식 거래 정지를 풀어준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금융감독당국의 개선 조치를 전혀 이행하지 않으면서 행정소송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겠다며 효력정지 신청을 내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는데 제재가 먼저 풀린 것이다.

전조(前兆)는 보였다. 앞서 증선위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 발표시 김용범 증선위 위원장(금융위 부위원장)은 '상장 폐지' 가능성에 대해 "예단할 수 없다"면서 "한국거래소에서 2009년 2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제도를 도입한 이후 16개 회사가 심사대상이 됐지만 상장 폐지된 사례는 없었다"고 굳이 참고 사례를 소개했다.

기심위 판정이 졸속적(拙速的)이라는 지적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기심위 심사를 거친 다른 기업 34개사의 평균은 39.5일로 삼성바이오 18일의 두 배가 넘었다. 코스닥 시장 170개사의 경우도 평균 52.1일로 3배에 가까웠다. 이 의원은 "기심위가 통계적으로도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삼성바이오 상장 유지를 결정한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 스무고개는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고 있다. 역대 사례를 봤을 때 금융감독당국은 분식회계 판정 이후로는 '오불관언(吾不關焉·나몰라라)'의 자세를 견지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자료를 행정·형사·민사 소송 재판부에 내놓지 않음으로써 증거 불충분으로 관련 판결이 도미노 게임처럼 뒤집어지는데도 말이다. 그 결과 분식회계를 한 회사나 임직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빠져 나갔다.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도 '오십보 백보'였다.

서두의 우화에서 장자는 좀도둑을 잡는 데는 추상같았던 기존 법과 제도가 나라 전체를 훔친 큰 도적들에게는 힘을 못 쓰고 되레 도둑질에 활용되는 모순을 매섭게 질타했다. 삼성바이오 사건을 다룸에 금융감독당국이나 사법당국은 장자의 일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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