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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 기해년 삶을 결심하다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일간투데이
  • 승인 2019.01.10 17:08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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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항해의 나침반 같아서 이에 대한 정리가 꼭 필요하지만 외면하거나 간과하기 쉽다. 이러한 질문은 꼭 필요하고 쉬워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인생의 본질적 문제에 해당하는 거대 담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견자들의 다양하고 훌륭한 가르침이 있지만 이 또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다.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는 시대를 앞서간 석학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2019년 한 해의 행동지침으로서의 삶의 방법만 나누기로 한다. 한 해를 돌아보는 연말에는 실망과 좌절, 아쉬움이 주를 이루지만 한 해를 여는 연 초에는 기대감과 계획, 설렘으로 가득하게 된다. 좀 더 적극적이고 희망찬 설계로 삶을 모색한다.

넉넉지 않지만 당당하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살기로 한다. 우리들 각자의 삶은 세모나 동그라미 간의 우열을 매길 수 없듯이 비교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다. 하지만 세상은 부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다. 부는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서 늘 당당으로 이어지게 하는 반면 가난은 무능과 게으름을 연상시키면서 심지어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이웃이 한 둘이 아니다. 부끄러운 부자가 있다면 떳떳한 가난도 있다. 아이큐로 지혜를 측정할 수 없듯이 집의 평수가 가족의 화목을 보장할 수 없으며, 연봉이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 없다. 진정한 가치는 돈으로,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 넉넉하지는 않지만 당당하게

변명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질 때 문제의 원인을 자기가 아닌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변명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려하지만 변명으로는 자신을 지키기 어렵다. 이는 이러한 변명에 자기 자신도 속지 않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변명은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우리를 자신의 삶 바깥에서 서성이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부족을 변명으로 외면하지 말고 마주봐야 한다. 마주 봄이 끝날 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늘 부족하고 한심하다고 여기는 내적 공격을 그쳐야 하지만, 모든 탓을 외부로 돌리는 변명은 더더욱 삼가야 한다.

절제하며 살기로 한다. 절제하는 심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연말 설교말씀이 생생하다. 감정을 절제하고, 욕심을 절제하며, 인간관계를 절제하고, 물질과 음란과 헤어지며, 시간을 절제하라고 하셨다. 그렇다. 절제하는 심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사춘기는 청소년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에게도 사춘기가 있다. 어른의 사춘기는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을 떠나보내고 이상과 작별한 후,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우려할 때 끝난다고 한다. 60이 넘어 중반으로 가다보니 어른의 사춘기는 졸업한 듯한데, 절제하는 심플한 삶을 금년의 목표로 삼고자 한다.

■ 숫자 아닌 가치로 매겨지는 삶을

저항하며 살기로 한다. 2018년에는 갑질 문제가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갑질은 천박한 강자의 횡포임에 틀림없으나,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갑질에 저항하지 못한 을의 무력함이다. 갑질 그 자체로 인한 고통도 문제지만 이에 저항하지 못한 을의 자신에 대한 비굴함과, 부당한 대우에 표정한번 구기지 못하고 꿈틀하지도 못한 채 굴복한 을의 모습이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갑질을 외면하면 계속해서 을을 하대하게 만들기에, 인격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 ‘나도 당했다’는 미투 운동이 그래서 정당화된다.

숫자가 아닌 가치로 매겨지는 삶을 살기로 한다. 중산층의 조건에 관해 프랑스와 대한민국의 차이를 말해주는 내용은 이미 많은 이에게 알려져 있다. 우리는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월 급여, 예금 잔고로 기준을 말하지만, 프랑스는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루고, 한 가지 이상 요리를 할 수 있으며, 하나 이상의 사회봉사단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의 중산층은 숫자로 표시되지만 프랑스는 가치로 표시된다. 서열을 매기는데 익숙하고 이를 계층 간 차별수단으로 삼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숫자는 비교하기 쉽고 서열을 매기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가치는 잊은 채 숫자로 나타난 결과물에만 주목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치로 매겨지는 삶을 살기로 한다.

나를 돌보는 나다운 삶을 살기로 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개성보다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교문화는 주어진 역할과 도리를 강조하며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맞추는 것을 아름다운 삶으로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 볼 틈이 없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불안해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자격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때도 적지 않다. 나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과 철학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무엇에 행복해하려 하는지를 아는 삶이, 나다운 삶이다.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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