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현재까지 인류가 고안한 정치체제 중 최상의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평가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팔아 저질러지는 '악행'도 적지 않지만, 장점이 더 많기에 지금까지 지구촌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해 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지방자치는 기본적 민주주의,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로 불린다. 세계화·분권화 시대에 지방자치는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지방정부 선출직들의 역할도 갈수록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지방정부 선출직은 봉사자이지, 위세 떠는 벼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을 뽑아준 주민들을 대신해 시·도, 시·군·구정이 잘 운영되도록 하는 주민의 대리인일 뿐이다.

조례를 제·개정하고, 예산을 심의·결정하며, 공무원과 지자체의 예산을 지원받은 시민사회단체의 업무를 감시하는 게 주된 업무다. 따라서 지방의원들은 도덕적으로 청렴하고 전문적인 역량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27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하지 않는 게 지방의원 자질론이다. 지방의원 하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리와 막가파식 언행, 외유성 해외연수 등이 연상되는 현실이다.

■예천군의원들의 '국제망신' 눈총

이번에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외유성 연수 기간 추태(醜態)'를 부린 것이다. 해외 연수를 떠난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가이드 폭행 및 여성 접대부를 요구해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박종철 예천군의회 부의장(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2월 20일부터 7박 10일 간 미국과 캐나다로 연수를 떠나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술에 취해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등 물의를 빚어 호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뿐 아니다. 군의원 가운데 권도식 의원(무소속)은 전화로 부를 수 있는 여성 접대부, 이른바 '성매매 콜걸'까지 불러 달라는 요구까지 가이드에게 했다니, 국제망신에 말문이 막힌다.

이렇듯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의 윤리도덕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반 소시민은 생각도 못할 의장단 나눠먹기 자리다툼, 거짓말, 도박, 부패 비리 연루, 성매매 및 유사성행위 의혹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이 적잖았다. 이들에게 지방행정의 정책과 예산 등을 맡기는 일은 주민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다. 주민 삶의 질 향상과 편의를 위해 일해야 할 지방의원이 오히려 주민의 원성을 사고 있으니 원…

'경행록'은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남을 나무라는 이는 그 사귐이 바르지 못하고, 자신에게 관대하게 용서하는 자는 제 허물을 고치지 못한다(責人者不全交 自恕者不改過)."

■재정자립도 바닥…씀씀이는 '펑펑'

더욱 문제인 건 쪼들리는 지방정부 살림엔 아랑곳 하지 않고, 주민 혈세를 제 돈인 듯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계부채도 그렇지만 지방 재정도 적신호를 드러낸 지 오래다. 지자체 채무는 약 28조에 달한다. 여기에 지방공기업 부채 약 72조를 합하면 100조원에 이른다. 출자·출연기관 부채 등을 더하면 지자체 부담은 100조원 규모를 훌쩍 웃돌게 마련이다. 재정자립도마저 열악하니 설상가상이다. 군 단위는 평균 18.8%에, 도 단위는 38.2%에 그친다. 선심공약·행정의 뒷감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이런데도 지방 감투를 쓰겠다는 이들은 공짜만 앞세운다.

범죄적 물의를 빚은 예천군 형편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지난해 기준 재정자립도는 13.05%. 전국 기초단체 중 뒤에서 12위에 그친다. 그런데 군의원 해외출장비는 전국 2위에 해당하는 1인당 540만원 꼴이다. 재정자립도는 재정수입 중 자체 재원이 차지하는 비율로, 지자체가 필요한 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체 수입으론 쓰임새의 8분의 1밖에 감당 못 해 중앙정부에 손을 내미는 처지라는 얘기다. 그런 꼴에 해외에서 추태라니! 분권도 좋지만 중앙정부의 제도 개선이 긴요하다.

"지방관리 노릇을 잘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로워지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하고, 청렴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지방공직자의 으뜸가는 임무이다(善爲牧者必慈 欲慈者必廉 欲廉者必約 節用者 牧之首務也)."

청백리의 표상 다산 정약용 선생이 200여년을 뛰어 넘어 오늘 우리 위정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선출직 공직자들은 자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하는 위민(爲民) 정신, 곧 민주주의 기본을 다시 배워야겠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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