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가 대한민국 헌정사상 어느 해보다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한 해를 맞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이다. 헌정사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됨으로써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록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검찰인사의 실무 책임자 자리인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안태근 전 검사장은 과거 여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또한 가장 많은 변호사를 보유해 국내 최대 로펌으로 평가받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전범 기업 법률 대리인으로서 양 전 대법원장과 재판거래를 논의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이른바 판사·검사·변호사로 구성되는 '법조삼륜(法曹三輪)'의 총체적 비리 혐의가 여실히 드러난 게 최근 상황이다. 근본적 법조 개혁의 필요성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사유는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구속됨으로써 7개월에 걸친 검찰 수사는 마침표를 찍고 죄의 유무와 처벌 수위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펼쳐지게 됐지만 오늘의 법조 현실에서 주는 교훈이 무겁고 크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사실 가운데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이 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계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사법농단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킨 결정적인 스모킹건은 '김앤장 독대 문건'과 '이규진 수첩' 그리고 '판사 블랙리스트'로 꼽힌다. 예컨대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한·일관계 개선을 원하는 청와대와 외교부 부탁을 받고 일제 강제징용 재판 절차를 늦춰준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김앤장측이 작성한 문건에 2015~2016년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의 한상호 변호사 등을 만나 일본 강제징용 소송 절차를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관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을 목적으로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하고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통해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유출 등에 직접 관여한 혐의도 받는다. 또 전국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를 현금으로 거둬들인 후 여러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간부들한테 격려금 명목으로 건넨 국고손실 혐의 등 40여개에 달하는 혐의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됐다.

이번 일은 누구보다 먼저 법질서 확립의 대상은 바로 법조인이라 데 심각성이 있다. 현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검찰의 횡포, 무성의한 재판과 판결문을 남발하는 법관, 법 장사꾼으로 전락한 일부 변호사 등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 결핍의 법률가들이 적지 않은 세상이다.

사악함을 징치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본분에 충실한 법조인상을 구현해야만 수사와 판결의 정당성이 담보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위한 고뇌와 번민을 하는 법조인이 그리운 이유이다. 개방화시대,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법조인의 윤리의식과 변화된 실천의지가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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