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대 명예교수·시인

신문을 보다가 문득 콜드웰의 소설 '토요일 오후'를 떠올리게 됐다. 그 소설에는 푸줏간 풍경이 나온다. 푸줏간의 톰이 냉장고에서 꺼낸 고기를 도마에 놓고 베고 누워서 잠을 자는데, 파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아도 그냥 나는 게 아니라 건물 바깥에 있던 파리들과 안에 있던 파리들이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 한 대목은 이렇다. 

"…톰의 가게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게으름뱅이들을 마구 쏘는 통통한 파리들은 고깃간 문안으로 들어오려는 몇 마리의 낯선 파리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지만, 그 파리들은 기어코 안으로 들어와 도마 위의 새로 묻은 피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 한국당내 벌써 황교안 '견제구'

신문의 헤드라인은 "朴정부 功도 평가해야…꽃가마 탈 생각 없다"로 되어있고, 그 아래 "한국당 입당 황교안 前총리, '적폐수사, 합법·공정하게 해야, 우리의 主敵은 북한공산집단, 국방백서에서 삭제 말이 되나'라는 부제가 또렷이 보였다. 

이 글은 공명정대하고 신선했다. 그는 "만약 당을 이끌게 되면 친박·비박 계파 구분을 없애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대한만국과 자유한국당을 대표하는 '친한(韓)계'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젊은 인재들을 교육하고 중용해 계파 구도가 발붙일 공간을 남기지 않겠다"고도 했다. 

나는 이 말에 솔깃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이 왜 지리멸렬했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맥을 추지 못했는가. 그것은 교육의 부재, 수련의 부재에 있다고 봤다. 문재인 정권이 시대 지난 이념으로도 밀어붙이는 것은 무장된 이념에서 기인된 게 아닌가 한다. 

한국당은 자기의 존재위치를 찾고 국민 앞에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안에 있던 파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판의 침을 쏘는 것이었다. 당이 어려운 때 가만히 있다가 무임승차하려 한다거나, 정치적으로 꽃길만 걸어왔다고 비난하면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1998년, 국보법을 지키라는 책을 냈다.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소송도 성사시켰다. 또 박근혜 정부의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부분은 구하면서 진정성 있게 나가겠다. 다만 지난 열한분의 대통령 누구에게나 공과(功過)가 있는데 공무원연금개혁, 규제개혁 등 박근혜 정부의 공에 대해서도 합당한 평가가 내려져야 미래로 갈수 있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이런 가운데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한 채 꼬리 내리고 쥐 죽은 듯이 지내던 내부의 파리들이 밖에서 들어오려는 파리에게 일침을 가한다. 가령 김무성 전 대표는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게 된다"고 했는데, 푸줏간 안에 있는 파리는 이런 타성에 젖어있는 게 문제다. 분열의 씨앗이라니, 자신은 무얼 했다고, 부끄럽지도 않은가. 자유한국당에는 이런 뻔뻔스런 파리들이 너무도 많다. 

■ 어려운 시국에 '공생공영' 자세를

산불이 휩쓸고 지나갔으면 모조리 타버린 잿더미에서 새싹이 나와야한다. '3040 신인들'의 돌풍이 돋보였던 한국당 오디션(조직위원장 선출)에 나타난 현상도 새싹의 길조라 하겠다. 공개선발 15곳 중에서 7곳이 3040으로 1위를 달렸다. 자유한국당이 15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직위원장 공개오디션에서 청년 정치 신인들이 전·현직 구회의원을 꺾는 이변이 속출했다고 한다.

현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질문에 황교안 전 총리는 "북핵문제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데 정부는 북한 주장에 동조한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 공산집단이다. 그런데 국방백서에서 그 개념을 삭제했다니 말이 되나?"라고 답변한 것을 보면 선이 분명한데, 문제는 안에 있는 파리들이다. 푸줏간 도마 위의 피 맛에 길들어있는 파리들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전 총리를 당 상임고문에 추대하려다가 내부 반발로 무산됐다. 푸줏간 안의 파리가 밖에서 들어가려는 파리를 막는 셈이다. 이 어려운 시국에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공생공영(共生共榮)해야 하지 않겠는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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