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병화

▲ 조병화 시인
아직은 얼어 있으리,
한 나뭇가지, 가지에서
살결을 찢으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싹들
아, 이걸 생명이라고 하던가

입춘은 그렇게 내게로 다가오며
까닭 모르는 그리움이
온 몸에서 쑤신다
이걸 어찌 하리

어머님, 저에겐 이제 봄이 와도
봄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봄 냄새나는 눈이 내려도.


​■출처 : '조병화 시전집' (국학자료원, 2013)

▲입춘(立春)은 계절이 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날로 1년 24절기의 시작이다. 이때 옛사람들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글귀들을 써서 대문이나 들보에 입춘첩으로 붙이며 한 해의 행운을 기원했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어있는 입춘은 아직은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 머지않아 찾아올 봄에 대한 희망과 예감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부풀게 한다. 조병화 시인도 입춘을 "아직은 얼어 있으리"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나뭇가지의 "살결을 찢으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싹들"이라는 '생명'의 기운으로 노래한다. 입춘 시기, 봄은 온몸에서 쑤시는 "까닭 모르는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때론 "봄 냄새나는 눈"으로 다가온다. "입춘은 그렇게 다가오며" 누구에게도 "봄을 이겨낼 힘이 없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거나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에 영혼의 영생(永生)을 믿는다"고 말했다는 조병화 시인에게 입춘은 또한 '어머님'을 떠올리며 그 뜻을 되새기는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공자는 "일년지계 재어춘(一年之計 在於春) … 춘약부경 추무소망(春若不耕 秋無所望)"(명심보감 입교편')이라고 했다. 이제 다시 일 년의 계획을 알차게 세워 남루한 일상의 밭을 갈아 나가야 할 때이다.

■조병화(趙炳華, 호는 편운(片雲))

△1921년 경기도 안성 출생, 2003년 영면.
△1949년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출간으로 등단.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졸업,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물리화학과 수학, 중화학술원 명예철학박사, 중앙대와 캐나다 빅토리아대 명예문학박사 학위.
△경성사범학교, 인천중학교, 서울중학교 물리교사, 경희대학교 문리대학장, 경희대 교육대학원장, 인하대 문과대학장, 대학원장과 부총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세계시인대회 국제이사, 제4차 세계시인대회(서울, 1979) 대회장, 국제 P.E.N. 이사 역임.
△아세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대한민국문학대상,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 5·16민족상 수상.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 '사랑이 가기 전에'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밤의 이야기' '존재의 이유' '가숙(假宿)의 램프' '어머니' '남남' '조병화 시화집' '창 안에 창 밖에' '내 고향 먼 곳에' '딸의 파이프' '낮달' '안개로 가는 길' '공존의 이유' '먼지와 바람 사이' '세월의 이삭' '머나먼 약속' '나귀의 눈물' '고요한 귀향' '어두운 밤에도 별은 떠서'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다시 갈 수 없는 세월' '따뜻한 슬픔' '고백'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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