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또 다른 길- 물길과 철길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하루 종일 걸리던 시절이 있었다. 경부선 철도가 처음 개통했을 당시, 서울에서 부산을 가려면 아침 먹고 떠나도 새벽 0시가 되어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속 300km의 고속철도(ktx)를 이용하면 불과 세 시간도 걸리지 않는 시대가 됐다. ‘일일생활권’이 아니라 ‘한나절 생활권’의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속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건 1980년대 말이었따.당시의 상황을 보면 인구의 64%, 국민총생산의 69%가 집결된 서울-부산의 간선축인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경부축의 물류난과 여객 수송의 문제점을 해소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1989년 5월,경부고속철도 건설방침을 결정하고 1990년 기본계획과 노선을 확정한 후 1992년 6월에 건설에 들어갔다. 남은 일은 고속철도를 어떤 차종으로 결정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따. 많은 나라가 경합을 벌인 가운데 독일의 ICE와 프랑스 알스톰 사의 TGV 가운데 TGV가 선택됐다.

모든 교통 시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1차적으로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또 나아가 서는 지역간 귱형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부 노선만 고속철화되면 호남 쪽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게 될 게 뻔한이치였다. 또 국토의 어느 한쪽만 편중되게 발전하는 문제도 우려됐다. 또 남북한 철도가 연결된다고 예상했을 때,대츅 철도와의 연계성도 고려해서 1999년 12월,호남선 전철화 추진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경부고속철도는 1단계 2단계로 나누어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우선 2004년 초까지 서울-대구 구간을 신설하고, 대구-부산과 대전,대구 시내를 관통하는 구간은 기존의 경부선을 전철화해서 2004년 4월1일에 서울-부산 구간을 개통했다.

대구-경주-부산 구간과 대전, 대구 시내통과 구간을 신설하는 2단계 사업은 2002년에 착공해서 2010년에 완공될 예정이다.호남고속철도는 2007년 착공해서 2015년 1단계 사업이,2020년경 2단계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그런데 2003년 4월,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를 동시에 개통한다는 방침이 결정되면서 우선 서울-대전은 경부고속 철도를 이용하고, 나머지 광주와 익산, 목포는 기존의 호남선을 전철화하기로 해서 호남선도 경부선과 같은 2004년 4월 1일에 개통했다.

우리 고속철도의 차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다.경쟁 끝에 차종이 프랑스의 TGV로 선정된 후인 1993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반가운 발표를 했다.

우리나라의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조선시대의 ‘의궤’ 297권을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 행사의 내용을 자세하게 적은 기록이다. 한마디로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꽃이다. 의궤에는 행사내용뿐 아니라 그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 등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어 조선시대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를테면 <가례도감의궤>에는 왕실의 결혼식 준비와 철차, 당일의 행사내용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적혀 있어 마치 한 편의 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의궤는 전쟁이 나도 가장 안전한 강화도로 보내졌다. 강화도에는 규장각(지금의 국립도서관) 분관인 외규장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서구 열강들이 조선을 침략할 때 강화도가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고 말았다.1866년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은 퇴각할 때 외규장각에서 각종 서적 5,000점을 불태운 후 의궤 일부를 약탈해갔다.

당시 강화도를 침범했던 프랑스의 해군 장교 주베르는 “이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에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귀중한 자료들이 돌아온더니 더없이 반가울 일이었다.그런데 이어 우리는 또 다른 소식을 접했다. 미테랑 대통령이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조선의 책들을 돌려주겠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 프랑스 여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인터뷰한 내용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녀는 국립도서관의 사서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 나라 문화재도 아닌 남의 나라 문화재에까지 그렇게 애착을 보이는 점에 놀랐고, 더는 황당했다. 훔쳐온 문화재를 돌려주겠다는데, 마치 자기네 것을 뺏기는 것처럼 슬퍼하다니 이건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약속과 달리 의궤는 단 한 권만이 돌아왔을 뿐, 지금도 이국 땅, 파리 국립도서관 서고에서 잠자고 있다. 또한 나라와 나라의 약속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기 식이 되어도 좋은 건지 프랑스 정부에도 묻고 싶다.

남의 물건조차 돌려주지 않을 정도로 문화재에 애착이 많은 프랑스라면, 전쟁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돌려받지 못했을때 어떻게 하겠느냐고도 따지고 싶다. 빠르고 쾌적한 고속 전철을 탈 때마다 ‘아깝고도 아쉬운’ 그 의궤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도둑 맞은 것처럼 허전해진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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