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길위에서 생각한다

어느 증권회사에서 주식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설문을 던졌다. ‘주식투자를 할때 그 기업의 어떤 점을 보고 투자하는가?’

여러 답변들 이 나왔지만 대체로 그 기업의 재무구조나 실적, 매출과 앞으로의 비전을 본다는 대답이 많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많은 투자자들이 꼽은 것은 ‘그 기업의 CEO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창업한 지 얼마 안 되는 기업일수록 CEO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그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 의 약자로서 최고경영자를 뜻한다. 진정한 CEO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경영이념,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기업의 CEO의 역할과 자질이 지대하다는 의미일 터이다.

기업에서 CEO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국가 경영이나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끄는 데도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환경에선 한 국가나 조직의 리더도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같은 감각과 자질을 갖춰야만 한다.

그런데 이미 800년 전에 유능한 CEO의 면모를 보여준 이가 있었다. 몽골제국을 이끌었던 칭기즈칸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당시를 요즘의 사고방식으로 살다간 사람이었다. 8시간 후, 혹은 8개월 후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에 800년 전 21세기를 살았다는 소리는 어쩌면 황당무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세계화, 정보화, 첨단기술, 무한경쟁이라는 단어들로 요약되는 환경 속에 놓여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삶의 방식들을 칭기즈칸과 그가 이끈 유목민들은 이미 800년 전에 터득해서 실천했다는 것을·······.

때문에 칭기즈칸의 통치철학과 전략, 전술을 살펴본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옛 발자취들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들을 벤치마킹하는 작업이다. 칭기즈칸이 정복한 땅은 무려 777만㎢. 이는 알렉산더대왕, 나폴레옹,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넓은 규모다. 이 같은 사실만으로도 그는 영웅의 반열에 오를 만하지만 단지 역경을 극복하고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단시일에 정복했다는 사실만이 그가 추앙받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칭기즈칸과 그가 이끈 유목민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한마디로 ‘꿈’ 이었다. 그들은 함께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일궈낼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열린 사고’ 로 ‘꿈의 고유’ 를 일궈냈다. 칭기즈칸이 난폭하고 독선적이어서 부하들과 백성들에게 일방적인 복종과 희생만을 강요하는 유아독존형 리더였다면 과연 ‘꿈의 공유’는 가능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가난한 유목민들로 하여금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게 만들었을까?
몽골 초원에는 지독한 가뭄과 때 이를 강추위라는 무서운 재앙이 있다. 몽골 사람들은 대대로 그런 재앙을 겪었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는것’ 이상의 가치는 없었을 터.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전쟁이나 약탈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점차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내전을 그치고 바깥세상을 정복할 포부를 갖게 되었다. 한마디로 파이를 키우겠다는 생각이었다.

‘자연에 맞서는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강인함, 다시 말해서 막강한 개인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던 몽골의 유목민들은 불과 100만에서 200만 명으로 중국, 이슬람, 유럽인 1억에서 2억 명을 정복하고 거느렸다. 그것도 150년 동안이나 말이다. 일정한 지역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이들과 유목민의 생활양식을 비교하면 그들이 가졌던 경쟁력을 실감할 수 있다.

농경정착민들의 경우, 관심은 씨를 뿌릴 땅(아래)과 비를 내려줄 하늘 (위)뿐이다. 또 자기 농사에만 신경 쓰면 될 뿐, 옆 사람의 형편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되므로 당연히 소유의식이 강해지고 따라서 계급이 발달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위아래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직적 정착사회에서는 모험이 딱히 필요하지 않다.

반면 이동하며 살아야 하는 유목민들은 항상 옆을 봐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싱싱한 풀이 널린 초지를 끝없이 찾아 헤매야 한다. 위아래가 아니라 옆을 살펴야 하는 이런 생활의 반복 속에서 유목민들은 자연스럽게 수평적 마인드를 갖게 된다.

또한 사방이 트인 초원에서는 동지가 많으면 살고, 적이 많으면 죽게 된다. 때문에 민족과 종교, 국적을 초월해서 한 사람이라도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다. 이 같은 사회에서는 개방이 최선의 가치로 통한다. 당연히 출신이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칭기즈칸의 경쟁력 중에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참모들이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사람을 ‘말’이나 ‘개’ 라고 부르는 게 농경사회에서는 모욕이지만 몽골 유목민들에게 그것은 최고의 찬사가 담긴 칭호였다. 칭기즈칸의 곁에는 이른바 ‘4준마’, ‘4맹견’이 포진하고 있었다.

4준마는 참모이거나 정책 쪽에서 활동한 측근들이었고, 4맹견은 전투의 지휘관들이었다. 이 칭호는 그들이 자칭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웠던 적들이 붙여준 것이었다. 적의 찬탄을 자아낼 만큼 그들은 두렵고도 용맹한 존재였다. 이처럼 CEO칭기즈칸의 곁에는 최고의 역량과 충성심으로 무장된 사업부장들과 참모들이 있었다.

이 점은 대대적인 권한 위양이 불가피한 현대조직에서 최고경영자가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전리품의 분배에도 칭기즈칸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동했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들이 패배한 부족의 가축과 재산을 전리품으로 취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도착한 순서대로 전리품을 취하는, 이른바 선착순 방식이었다. 이런 경우 맨 앞에서 싸우는 사람만이 더 많은 이익을 볼 수밖에 없고, 다른 방식으로 전쟁에 기여한 사람들에게는 돌아오는 것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칭기즈칸은 이런 불공평을 해소해서 조직 전체의 전투력과 사기를 높이기 위해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전리품을 공동의 몫으로 두고 공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개인 약탈의 금지’ 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선언도 했다. 수많은 기득권층의 반발을 감수한 이 같은 조치로 모든 병사들은 성취욕을 불사르게 되었다. 이런 방식은 현대의 우량기업들이 시행하는 스톡옵션 등의 이익분배제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칭기즈칸은 이미 800년 전에 신경영을 실천했던 셈이다.

또한 몽골군이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피드였다. 적들이 미처 대비할 여유를 두지않고 바람처럼 들이닥쳤다가, 바람처럼 사라져버리곤 했다. 그들은 군대의 이동속도, 전투의 진격 속도를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것은 소지하지 않고 꼭필요한 것은 가볍게 만들었으며 병참기능이 따로 없는 군대를 운용했다. 유연하고 슬림화된 조직, 감량경영을 통한 스피드 경영을 몽골인들은 이미 앞서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칭기즈칸의 승리의 비결은 ‘정보 마인드’에도 있다. 초원지대는 사방이 평평하여 언제 갑자기 적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고, 숨거나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몽골인들의 인사말은 “안녕하십니까?” 가 아니라 “당신이 온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였다. 이처럼 정보가 생존수단이었던 그들은 정보를 가져다주는 외지인, 다시 말해 나그네를 환대했다.

이때문인지 몽골군은 첩보전, 심리전에 매우 능했다고 한다. 또한 칭기즈칸은 일정한 거리마다 역을 두는 이른바 ‘역참제’로 정보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하는 정책도 썼다. 그런가 하면 칭기즈칸은 기술자를 우대한 리더였다.

칭기즈칸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결코 해치지 않은 적진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기술자들이었다. 그는 “기술자6만 명을 포로로 잡으라” 는 명령을 내리고 기술자 확보에 주력했다. 기술을 가진 자만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적은 병력으로 원정에 나서야 했던 불리한 조건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갈고 닦은 기술력은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한 예로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기마전에서 유효하게 쓰였던 반달칼이라는 무기도 칭기즈칸 군대가 만든 게 아니라 아랍인들의 발명품을 칭기즈칸 군대가 실전에 개량 도입해서 효과를 거둔 것이었다.

어느 경제연구소에서는 칭기즈칸의 국가 경영방식을 ‘ 21세기 디지털 유목민’ 에 비유해서 핵심요소를 소(small), 속(speed),연(networking),개(open)로 설명하고 있다.

창조적 소수들이 ‘작지만 강한 정부’를 만들어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하는 영토와 인구를 지배하고 열흘에 4천Km를 달리는 스피드로 행정하며, 역참제와 실크로드를 활용하여 오늘날 인터넷과도 같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민족과 종교를 초월하여 인재를 기용하는 철저한 능력주의 인사를 펼쳤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런 국가 경영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다.

CEO로서의 자질을 제대로 갖추었던 칭기즈칸이 있었기에 유목민이었던 몽골인은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조직 곳곳에도 이런 자질과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들이 포진할 수 있다면 조직의 경쟁력 또한 막강해질 것이다.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았던 칭기즈칸처럼 21세기에 22세기, 나아가 더 먼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리더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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