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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 3·1 운동의 법적·정치적·역사적 의의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일간투데이
  • 승인 2019.02.26 15:24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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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전 국민이 일어섰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의하면, 숨진 사람만 7천509명, 부상자 1만5천961명, 투옥된 사람이 4만7천명이라고 한다. 총독부 기록이니 시위자를 줄였을 수 있는 통계인데, 당시 인구 1679만 중 200만 명이 넘게 투쟁대열에 참여했으니, 일제에 대한 전국가적 ‘항거’였다. 대규모 거사를 모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총칼의 무단통치 시절, 전 국민이 봉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적으로 3·1 운동은 국민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해줬다. 조선이나 대한제국 당시의 국민은 임금의 백성으로 신민(臣民)에 불과했고, 국가권력의 단순한 지배객체로 취급됐지만, 3·1 운동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모든 국민이 지배주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신민은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저항했고, 국민이 됐다.

■ 불가능에 도전한 100년전 선조들

또한 3·1운동은 조선 및 대한제국과 결별하게 해줬다. 3·1 운동의 독립의지는 한 달 만에 상해 임시정부를 출범시켰고, 임시정부는 대한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희생했고 헌신했다. 순종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는 왕조복귀 대신 공화국을 선택했다. 통상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이양할 때 군주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간의 치열한 대립과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의 경우 군주가 있었음에도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공화정을 선택하였다. 나라를 빼앗긴 군주에 대한 책망이었다. 다만 대한이란 국호사용으로 논쟁이 있었다. 대한은 망한 국호이며 일본에 합병된 국호이니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대한은 일본에게 빼앗긴 국호이니 다시 찾아 독립했다는 의미를 살리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국호로 대한이 유지됐다. 3·1 운동에서 표출된 독립의지는 임시정부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토대가 됐고, 3·1 운동을 통해 국민은 전근대적 신민(臣民)에서 근대국가의 국민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 3·1운동은 불의에 눈감아서는 안 됨을 보여줬다. 대한은 동방의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였지만 어두운 시대에 좌절하지 않았고, 민족은 대동단결했으며, 함성과 외침만으로 모든 불의에 용감히 맞섰다. 3·1운동 전후로 우리 민족은 중국, 미국, 러시아 등에서 일본에 무장으로 항거했고 독립을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했다. 일제는 수많은 유관순을 감옥에 가뒀지만 그들의 독립의지까지 가두지는 못했다.

또 3·1운동은 제국주의의 탐욕을 꾸짖었다. 1910년대의 국제정세는 격변의 시대였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자신들의 배를 마음껏 채우던 탐욕의 시기였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가지게 됐고,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권을 열강으로부터 인정받자,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3·1 운동은 이러한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었고, 침략자 일본의 오만을 꾸짖었으며, 전 세계 약소민족에게 희망을 가져다줬다. 3·1운동 이후에 등장한 간디의 불복종운동, 중국의 5·4운동도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3·1운동의 영향으로 된 것이며, 3·1운동은 아시아 아프리카 모든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 국권피탈 원인 냉철히 돌아볼 때

역사적으로 3·1운동은 의로운 분노를 깨우쳐 줬다. 분노를 모르는 자는 스스로 일어서기 어렵다. 당시 아시아 전체를 휩쓸었던 막강한 일본의 군사력 앞에서 이들에 대한 분노표출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3·1운동은 이러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분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줬다. 의로운 분노는 계산을 모르기에 엄청나게 큰 힘과 동력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고 세계는 여전히 탐욕스럽다. ‘미중일러’의 동북아의 흐름은 예나 지금이나 도도하며, 우리의 현재도 동북아의 격랑 한가운데 놓여있다. 그럼에도 3·1운동 100년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는 이념, 계층, 세대 간 대립과 갈등에 놓여있고,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불가능에 도전한 100년 전 선조들의 항거정신을 되새기며 국권피탈의 원인을 냉철히 돌아보면서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열어가야 하겠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금번 3·1절 행사는 과거 역사에 대한 의례적 기념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반일만을 확인하는 행사에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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