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군대를 정련하는 데 있지 않다.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천하를 점령했지만 무력을 남용해 멸망했고, 항우는 폭력을 숭상하다 결국 사라졌다.(善爲者不師 秦而興兵占領天下 窮兵機式而亡 及項羽尙暴而滅)."

중국 송나라 때 문신 이방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소개된 글이다. 전쟁 준비만 하면 망국에 이른다는 경책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중대 고비를 맞이했다.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도출에 실패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 모두 군대를 동원해 전쟁하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를 가져오는 상생의 길을 걸으려 하지만 시각차가 크고 깊다.

"북한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제재 일부 해제를 원했다. 유엔 제재 결의 11건 중 5건, 그중에서도 일부다."(리용호 북한 외무상)

■비핵화 방법론 놓고 인식차 지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한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를 놓고 '일부 해제다'(북한)와 '그 정도면 전면 해제다'(미국)는 입장으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는 형국이다. 상호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하지만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인식차가 여간 큰 게 아니어서 간극 좁히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이다.

미국은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로켓 발사장에 이어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볼 때 신고를 뒤로 미룬 채 시설 중심으로 단계적 비핵화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추정된다.

이번 협상에서 미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로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과거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던 북한의 핵시설 신고 문제가 이번에도 중대 난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미국이 요구하는 핵·미사일 프로그램 전면 동결은 북한이 보유한 핵·미사일 시설 리스트를 빠짐없이 공개하는 전면적인 신고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핵·미사일 시설 리스트의 경우 예컨대 이런 것이다.

"영변 말고도 큰 핵시설을 발견한 게 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안다는 데에 북한도 놀라더라"
'세기의 담판'으로 주목받은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역할 주목

미국이 지목한 영변 외 핵시설은 작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 보도된 강선 우라늄 농축 의심시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과학 국제안보연구소는 강선에 원심분리기 수천 대가 있고 2010년부터 가동돼 왔다며 상당량의 핵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한바 있다. 강선뿐 아니다. 평양 인근의 산음동 미사일 종합연구단지,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스커드 탄도미사일 기지, 함경남도 허천군의 상남리 미사일 기지 등도 추가 핵시설로 꼽히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알맹이 없는 합의를 하기보다 일단 협상 결렬이라는 '차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페이스에 끌려 다니기보다 시간을 두고 비핵화를 견인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이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함에 따라 향후 벌어질 사태가 걱정스럽다. 이번 회담은 그에게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남북경협 등을 추진하고 북한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면 제재 해제가 절대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회담 결렬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강경 노선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간 중재력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비록 하노이 담판은 무산됐지만 한반도평화를 위한 북·미 대화의 모멘텀은 이어져야 한다. 시대 요청이자 8천만 한민족의 준엄한 명령이다.

평화의 소중함은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있다. 가능하면 싸움 없이 평화가 담보되는 게 지혜로운 일이다.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의 용병이다(不戰降軍上用兵)."라고 가르치고 있잖은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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