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
피해자들, "삼성 안전 교육·경고 소홀" 발병 의심…"지난해 중재 보상안, 특정 질병만 보상 한정" 비판

▲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 사업장에서 근무한 직업병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단체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며 관련 당국에 전자산업 노동자 보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4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14명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 사업장에서 근무한 직업병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단체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며 관련 당국에 전자산업 노동자 보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삼성전자가 사업장 노동자 안전 교육 및 조치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하는 한편 지난해 관련 단체의 중재를 통해 도출된 삼성전자 피해 보상안의 보상범위가 특정 질병으로 한정돼 제대로 된 보상책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4일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인 '반올림'은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암과 만성 피부질환 등 직업성 질환에 걸린 노동자 14명의 산업재해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삼성전자 사업장 소속 8명을 포함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외 협력업체 노동자들로 반도체, LCD, 휴대전화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반올림의 집단 산재신청은 지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14번째다. 반올림은 그동안 137명의 산재신청을 진행해 그 중 43명(근로복지공단 인정 25명, 법원 18명)이 업무상 재해로 병을 얻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이날 반올림은 신청자들이 직업병에 이르게 된 경위와 현재의 심경을 대신 전했다. 김모(42·여)씨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전자 기흥·화성 공장에서 반도체 웨이퍼 검사를 담당하다가 2017년 6월 폐암 진단을 받았다. 현재 항암 치료 중인 김씨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노출된 비소 등이 발암 원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는 반올림을 통해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가족력도 없는데 갑자기 폐암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업무가 검사 담당이어서 가공 공정에서 일하는 다른 엔지니어나 오퍼레이터보다 유해하지 않다고 해서 안전교육도 없고 위험을 경고 받은 적도 없었다"며 "회사가 조치를 소홀히 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니 참담하다"고 밝혔다.

송모(29·여)씨는 지난해 11월 삼성-반올림 중재안이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지 못한 점을 질타했다. 그는 "삼성전자 보상위원회는 클린룸에서 일하다 발병한 모든 근로자에게 보상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특정 질병만 보상한다"며 "특정 질병만 선별해 보상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라고 성토했다.

이어 "발병 요인이 유사하다고 알려진 다발성 경화증이나 루푸스는 보상대상이 되지만 다발성근염은 보상 대상이 아니라며 신청도 받지 않는다"며 "직업성 암과 희소병을 모두 다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지난 2009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사업장에서 일했으며 2016년 9월 다발성 근염을 인정받았다. 현재 송씨는 고관절이 괴사한 상태라고 반올림은 전했다.

삼성전자의 사내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2017년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서른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임한결씨의 어머니 유정옥씨도 나와 발언을 했다. 유씨는 "건강하던 서른 살 아들의 백혈명 진단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며 "반도체 산업과 희귀병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들이 일하러 나갔던 장소가 반도체 공장이었단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고 눈물지었다.

1989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한 이후 신부전증으로 투석 중인 한모(53)씨도 직접 나와 "포토 공정에서 아세톤, 신너 등 각종 약품을 매일 손으로 만졌다"며 "장갑을 끼고 작업해도 장갑이 녹는 열악한 작업환경이었다"고 당시 현장을 설명했다.

이어 "신부전증을 겪으며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고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힘든 사람들이 많다"며 "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의 산업재해가 인정되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밖에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2012년 유방암을 진단받고 지난해 2월 사망한 김모(37·여)씨 등도 산재 신청자에 포함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반올림은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는 이제 다 해결된 문제라는 말이 들리기도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백혈병 등 희귀병의 발병을 모르고 삼성이 어떤 공정에서 어떤 유해 화학물질을 쓰는지 모른다.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의 전체 규모가 얼마나 큰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다"며 "이번 집단 산재 신청 사건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고용노동부가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철폐하고 신속하게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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