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정세가 분수령을 맞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의 입장 변화가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완전 비핵화와 제재 완화 빅딜' 압박에 북한은 '제3의 길' 모색으로 맞서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와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를 계속 유지할지에 대해 조만간 결정을 내린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밝히고 나서 추이가 주목된다. 최 부상은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며 "짧은 기간 안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급격한 강경 대치 국면은 유보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측은 하노이 회담 당시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비타협적인 요구를 하는 바람에 미국의 태도가 강경해졌다고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에게 책임을 넘기고 있다. 북·미 최고지도자 사이는 여전히 좋다며 "궁합(chemistry)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는 최 부상의 언급은 파국을 피하겠다는 시사로 읽혀진다.

여기엔 최 부상이 소개한 대로 북한 군부와 군수업계 등에서 핵을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는 숱한 청원을 김 위원장 앞으로 보냈음에도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하노이 회담에 임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김 위원장이 회담 모두에 '고뇌·노력·인내'를 하고 왔다는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 북한에 국제정세를 바로 읽길 당부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부터 북한이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의견이 적잖았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감시단은 북한이 핵미사일의 조립·제조·시험 시설들을 분산하는 증거들을 포착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미국 조야의 시각은 북한에 대한 기대에서 불신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실이기에 북한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조치를 조기에 취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핵 폐기 리스트와 프로그램 등을 속히 제출하는 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의 생존과 번영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길 북한에 촉구한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력이 요청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최 부상은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기에 문 대통령을 중재자가 아닌 플레이어라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다. 오산(誤算)이라고 본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중재 의지를 신뢰해야 할 것이다. 북에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비핵화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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