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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 대한민국은 공무원 공화국이다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일간투데이
  • 승인 2019.03.26 16:33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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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을 국민전체의 봉사자라고 하지만 공무원을 봉사자로 믿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관이 정하면 민은 따라야 한다는 관존민비의식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은 정부부처가 모두 상전이다. 금융회사, 통신회사, 건설회사 등 나름 힘 있는 대기업도 국세청, 금융감독원, 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공무원의 한마디에 회사 운명이 오락가락한다. 국립대학도 교육부가 상전이다. 배 놔라 감 놔라 간섭이 심하다. 대학의 자율은 없고, 대학 역시 돈 때문에 맹종이 몸에 배어 있다. 가히 대한민국은 공무원의 나라다.

모든 재판에서 당사자들은 판사에게 죽어지낸다. 밉보이면 재판에서 지게 되니 변호사는 법정에서 재판의 내용보다 판사의 눈치에 더 큰 신경을 쓴다. 당당한 변호사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형사사건에서는 판사의 양형결정권, 특히 형량의 절반까지 깎아주는 작량감경 때문에 판사의 권위는 정의(正義) 이상이다. 법원은 피고인이 자백하고 반성한 때에만 작량감경을 해주기 때문이다. 무죄를 주장하거나 다툰 때에는 작량감경을 해주지 않는다. 이를 보통 ‘판사의 괘씸죄’라고 한다. 그러나 ‘남녀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인데 며칠 후 여성이 강간으로 고소한 경우’와 같이 증거가 애매해 무죄가 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사건에서는, 무죄를 주장하자니 작량감경의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고, 그렇다고 제대로 다퉈보지도 않고 자백과 반성문을 선택하자니 너무 억울하게 된다. 정의와 거리가 있다.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소속 공무원 ‘전원’의 노후가 보장된다. 판사나 검사는 변호사로, 일반직은 법무사나 집행관 등으로 재직 시보다는 지위나 영향력 면에서 다소 떨어지지만 괜찮은 정도를 넘는다. 미국(연방법관)이나 일본과 같이 정년까지 일하면서 법관의 변호사개업을 예외나 불명예로 여기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소망해본다.

■ 규제를 철밥통처럼 쥐고 ‘군림’

입법부의 경우, 국회의원에 대한 대접은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고 많다. 떨어지면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재기를 도모하는 이유도 당시의 영광을 잊지 못해 그렇다.

행정부 공무원도 입법부나 사법부 공무원 못지않게 고자세다. 아쉬울 것이 없다. 공무원은 각종 인·허가권을 가지고 국민에게 군림한다. 허가조건에 하자가 없는데도, 법조문에 없는 요건을 추가로 제시하며 충족을 권면한다. 말이 권면이지 강제다. 민원이 들어와서, 자문위원회의 의견 때문에 등 법조문에도 없는 것들이다. 계획대로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니, 공사는 차질을 빚고 이자는 밀리고, 속은 속대로 타고, 신청자는 이래저래 죽는다.

행정부 고위직에 오르게 되면 엄청난 혜택이 기다리고 있다. 고위직은 로펌이나 대기업 등이 두 손 들어 환영하는데, 전관을 활용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억대의 연봉을 받으니 밥값이라도 하려면 각종 민원을 후배들에게 들이 밀수밖에 없다. 후배들도 그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전직(前職)의 일탈에 적절히 눈을 감아주면서 자신의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준다. 또 그가 다시 화려하게 복귀할 수도 있기에, 관료사회 역시 그를 꺼진 불로 여기지 않는다. 교육부 고위직을 마치고 사립대학의 총장으로 가기도 한다. 10년간 대학등록금이 동결되다 보니 교육부에 전화 한통이라도 할 수 있는 전직들이 대학에 절실하기 때문이다.

헌법은 공무원이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만 덕담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위원회를 선호한다. 공무원은 위원회의 이름을 빌려 새로운 정책을 펼 수 있고, 잘되지 않을 경우에는 책임을 전가할 수 있어 손해 볼 게 없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가 지닌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다보니 정부나 지자체에는 위원회가 차고 넘친다. ‘위원회 공화국’이다.

공무원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눈치 100단인 공무원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느낌으로 권력의 생각을 잘 파악해서 움직인다. 공무원은 정권을 향해 눈치껏 움직이지만 권력이라고 행정을 쉽게 보기 어렵다. 행정은 권력에 없는 임기가 보장되며, 행정에 밉보이면 정권재창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사람을 물갈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교체가 아닌 전 정권 해체수준이다. 이전 정권의 모든 것이 부정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탈이 아닌데도 정부정책에 간여했다가 구속된 사람도 있으니,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탓하기도 어렵다.

■ 공무원 변하지 않으면 개혁은 없어

공무원노조는 본래의 사명을 저버린 지 오래됐다. 법률은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를 허용하면서 단체행동을 금하고 있는데, 전교조나 전공노는 정치적 중립의무를 밥 먹듯 어기고 있다. 회사가 망할 걱정도 없고 월급을 받지 못할 염려도 없는 철밥통 공무원에게 노조의 철갑옷을 입혀주니 그야말로 무적이다.

나라의 살길이 규제개혁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두 개 뽑힌다. MB도 전봇대를 뽑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도 손톱 밑 가시도 빼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붉은 깃발’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 이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필요이상 나서는 노조나 시민단체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을 늘리려면 약사가 데모하고, 원격의료는 의사가 저항하며, 차량공유서비스는 택시업계가 반발하기에, 규제개혁이 안 되는 것이 공무원 탓만도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 스스로가 규제개혁을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규제는 공무원의 힘이자 재취업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철밥통처럼 쥐고 있는 공무원들이 변하지 않으면 개혁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대다수 공무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지만, 어디에나 썩은 사과는 있게 마련이고, 썩은 사과는 지속적으로 도려내고 과감하게 추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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