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정의로운 세상은 요원한 꿈에 불과할까. 사회 어느 한 곳인들 청신(淸新)한 기풍이 감도는 곳을 찾기 어려운 게 현주소다. 그래도 공직세계만은 청렴하길 바라는 건 과욕일까. 현실은 우울하다. 악취 진동이다.

고위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모으기는 사회 기본질서를 무너뜨린다. 망국으로 가는 범죄다. 관리의 부정 축재 역사는 짧지 않다. 조선에선 아예 부패한 관리를 '낮도둑(晝賊)'이라고 불렀다. 명종, 선조 때의 문신이자 청백리인 이기는 함경도의 수령들이 가혹한 징수와 혹독한 형벌을 일삼아 낮도적이라 불렸다고 문집 '송와잡설(松窩雜說)'에 실었다. 또 성균관에 대해선 '조정에서 낮도둑을 모아서 기르는 곳(朝廷聚會晝賊而長秧之處)'이라고 기록했다고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정치인·고위관리들의 부패 '악취'

'백성 등골 빼먹는 공직자', 국민은 더욱 고달파지게 마련이다. 개혁의 시급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산의 외침을 들어보자. "탐학질하는 풍습이 노골화돼 백성들이 초췌해졌다.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충신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만 있겠는가(貪風大作 生民憔悴 蓋一毛一髮 無非病耳 及今不改 其必亡國而後已 斯豈忠信志士 所能袖手而傍觀者哉)."

부패한 조선후기사회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법과 제도 개혁의 청사진인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짓겠다는 뜻으로 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공직자, 특히 공위공직자 부패의 역사!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넓고 크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다. 국민 공감대도 크다. 한데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올해 안에 공수처 설치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고 있고, 기소권 여부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어 처리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클럽 버닝썬에서의 경찰 유착 의혹,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등을 에둘러 표현하며 특권층의 불법적 행위와 외압에 의한 부실 수사를 파헤칠 공수처 설치 시급성을 이날 재차 강조했으나 국회에서의 공회전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당이 생각과 입장을 바꿔야 한다. 이명박정부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이재오 한국당 상임고문이 "공수처 수사대상이 권력핵심 등 대부분 여권인데 왜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는지 속을 모르겠다"고 말한 바를 되새겨 듣길 바란다. 고위공직자 비리와 관련, 현직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수사를 덮는 경우도 있고 축소하는 경우도 있어 국민권익위원장 때 공수처법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하려고 준비를 했고 하지 않는가.

■'살아 있는 권력' 견제 공수처 절실

이런 흐름선상에서 문재인정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독립적인 특별수사기구인 공수처 신설을 박상기 법무장관에게 권고하고 관련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권한이 막강하다. 공수처는 수사·기소·공소유지권을 모두 갖고 경찰·검찰 수사가 겹칠 때는 공수처가 우선 수사할 수 있다.

수사 대상에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대법관·헌법재판관, 광역지방단체장 등 주요 헌법기관장 등이다. 여기에 장·차관 등 국가공무원법상 정무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 장성급 장교도 수사 대상이다. 공무원은 대체로 2급 이상이 해당하게 된다. 대통령비서실, 국가정보원의 경우 3급까지 확대한다. 고위 공직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도 포함된다.

수사 대상 범죄도 폭넓다. 전형적 부패범죄인 뇌물수수,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 외에도 공갈, 강요, 직권남용, 선거 관여, 국가정보원의 정치 관여 등 고위 공직 업무 전반과 관련한 범죄가 처벌 대상이다.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쳐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해 정의와 윤리가 뿌리내리는 선진 법치국가 건설의 계기가 돼야겠다.

고위공직자들이 '눈 먼 돈', 곧 땀 흘리지 않고 챙기는 돈을 멀리 해야 한다. 청렴사회 구현의 지름길이다. 다산선생의 '목민심서'는 이렇게 경책한다. "술을 끊고 여색을 멀리하며 노래와 춤을 물리쳐서 공손하고 단정하고 위엄 있기를 큰 제사 받들듯 할 것이요, 유흥에 빠져 거칠고 방탕해져선 안 될 것이다(斷酒絶色 屛去聲樂 齊遬端嚴 如承大祭 罔敢游豫 以荒以逸)." /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