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길위에서 생각한다

고대 중국의 위나라에 오기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면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 들곤 했다. 권위주의적이기보다는 병사들과 함께하는 리더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오기 장군의 눈에 한 병사가 걷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다리에 난 종기가 곪을 대로 곪은 것이었다.

오기 장군은 서슴지 않고 직접 종기를 짜주고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슬피 울기 시작했다.

“십수 년전에 오기 장군이 전쟁터에서 애 아비의 종기를 짜주었습이다. 애 아비는 감격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오기장군이 제 아이의 종기를 짜주고 고름을 빨아주었으니 우리 아들도 제 아비처럼 전사하지 않을 까 심히 두렵습니다.”

부하를 제 몸처럼 아끼면 그 부하는 목숨을 바쳐 충성한다는 이 이야기를 접할 때면 조직에서 윗사람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금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런가 하면 미국 공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에게 가르치는 ‘지도자의 신조’ 는 윗사람에 불과한 상관과 진정한 지도자인 리더를 비교함으로써 한 그룹의 수장이 지녀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1. 상관은 공포를 심어주고, 리더는 신념을 심어준다.
2. 상관은“내가”라고 말하고, 리더는‘우리들’이라고 말한다.
3. 상관은 방법을 알고만 있고, 리더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4. 상관은 원망을 낳게 하고, 리더는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5. 상관은 잘못을 꾸짖기만 하고, 리더는 잘못을 고쳐준다.
6. 상관은 권위에 의존하고, 리더는 팀워크에 의존한다.
7. 상관은 부하를 부리려 하고, 리더는 앞장서서 솔선수범한다.

8. 상관은 일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리더는 일을 재미있게 만든다.

이런 리더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한 가지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는 ‘공평함’이라고 생각한다. 사심에 가려서 사람을 판단하고 자리에 앉히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그 사람의 능력을 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이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 는 말이 있듯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면 사람을 기용할 때도 공평함을 잃기 쉽다.

실제로 객관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논공행상 차원에서 자신을 위해 애써준 사람을 요직에 앉혔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이렇듯 인사의 원칙이 무너지면 조직의 질서와 권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어떤 조직이든 인사에 원칙을 세우고 실천해야 조직의 기강이 바로잡히게 된다.

얼마 전 필자가 몸 담았던 기관장 자리는 인사에 커다란 결정권이 있는 위치였다. 6급 이하 직원의 임명권이 있으며, 5급 직원의 전보권이 있다.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가 원하는 사람을 기용한다는 게 나의 인사원칙이라면 원칙이다.

이걸 지키기 위해 내가 취한 방법은 이른바 ‘팔 길이의 원칙’ 이다. 나의 인사정책에 영향을 줄 만한 외부, 심지어 부하 직원들과도 늘 팔 길이만큼의 거리, 다시 말해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거리가 지나치게 멀면 아래 직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팔 길이만큼의 거리’ 로 상징화 한 것이다.

중국 청나라의 제4대 황제였던 강희제는 군주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를 강조했다. 그 첫째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요. 두 번째는 주변의 숭배며, 세 번째는 신기루 같은 거리감이다. 여기서 신기루 같은 거리감은 신하와 적당한 거리를 두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학 이론에 ‘거리의 미학’ 이라는 게 있다. 대상을 작품으로 담아낼 때 그 대상을 어느 정도 거리를 놓고 보아야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정답은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대상과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그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담아낼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심사숙고한 끝에 기용한 인물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을 쏟아야 할 것이다. 중국 송나라 사서에서 유래한 말 가운데 ‘의인불용 용이불의’ 라는 것이 있다.

“미덥지 못하면 맡기지 말고 일단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기용할 때는 팔 길이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되, 일단 자리에 앉힌 다음에는 모든 걸 믿고 맡기는 열린 마음, 이것이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일 것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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