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본사, 저작권법 내세워
가맹점 특정플랫폼 강요 늘어
사업주들, 인기 플랫폼 원해도
본사 허가없인 사용에 "제한"

▲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VR방에서 한국브이알에이알콘텐츠진흥협회 관계자들이 VR방 사업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사진=송호길 기자

[일간투데이 송호길 기자] 2년 전 청장년층 사이에서 창업 블루오션으로 여겨졌던 VR방. 당시 A씨는 전 재산을 투자해 경기도 수원에 한 프랜차이즈 VR(가상현실)방을 개업했다. A씨는 가맹본사로부터 외국 최대 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을 설치하고 운영해도 된다는 안내를 받고 영업을 시작했다.

가맹본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A씨, 그런데 이듬해 유통사로부터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사용했다며 고소장을 받았다. 황당한 A씨는 가맹본사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참 지나 가맹본사 측으로부터 국내 B사의 플랫폼을 사용하라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B사 플랫폼은 손님들이 찾을 만한 콘텐츠가 부족해 부당한 요구라며 A씨는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손님들이 주로 찾는 콘텐츠가 없는 플랫폼에 대한 사용료를 납부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며 "대작은 없고 졸작들만 많아져 손님들의 발길은 점점 끊기고 있어 계속 영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푸념했다.

18일 VR 업계와 사단법인 한국브이알에이알콘텐츠진흥협회(이하 KOVACA)에 따르면 최근 VR 프랜차이즈 가맹 본사가 게임 유통사의 특정 플랫폼 사용을 VR방 사업주에게 강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당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으면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에 신고한다며 사업주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A 가맹 본사 측은 이달 초 VR방 사업주에게 공문을 보내 특정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사용량이 없는 계정은 모두 회수조치 하겠다고 통보했다.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점주와 합법적으로 게임을 제공하는 개발사의 피해를 방지하고자 결정한 정책이라는 게 A 가맹 본사 측의 설명이다.

또 다른 B 가맹 본사도 지난달 공문을 통해 "자사의 허가를 받지 않은 콘텐츠의 사용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영업행위는 저작권법에 의해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률적인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정 플랫폼 사용을 권유했음에도 사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스팀을 이용해 불법 영업을 저질렀다는 게 가맹 본사의 논리다. 하지만 사업주들은 창업 당시 가맹 본사가 스팀을 사용해도 된다고 설명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황. 일방적으로 가맹 본사의 책임을 사업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자들의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비자가 자주 찾는 콘텐츠 유통권을 쥐고 있는 유통사마다 독자 플랫폼이 구축돼 있다. 이 때문에 사업주는 해당 콘텐츠를 사용하기 위해 그 유통사의 플랫폼을 사용해야 한다. 더구나 다른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통사마다 다른 요금체계 또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이용자가 없는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사용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VR 가맹점이 가맹 본사에 납입하는 비용은 전체 매출의 2 ∼ 5%를 차지하는 반면, 유통사는 매출액의 무려 30%가량을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VR방 이용료가 시간당 1만5천원일 경우 5천원은 유통사가 가져가는 셈이다. 임대료와 인건비, VR기기 유지보수 등 영업비를 떼면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지난 16일 일간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콘텐츠는 엄격하게 금지시켜야 한다"면서도 "다만 이용자가 없는 콘텐츠에 대해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보다 플레이 시간당 과금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중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가 한 플랫폼에 모여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사업주 입장에서는 인기 있는 플랫폼을 사용하고 싶지만, 유통사마다 독점권이 있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원인을 짚었다.

VR방 사업주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부당한 끼워팔기를 근절하기 위해 최근 KOVACA 산하에 조합을 결성했다.

김성광 KOVACA 사무총장은 "콘텐츠 불법유통은 궁극적으로 근절해야 할 사회악이 맞다"라면서도 "아직 VR·AR 산업은 수요공급에 맞춘 시장의 원리로 작동하기 어려워 대중적인 확산을 위해 양질의 콘텐츠가 저렴하게 소비자들에게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총장은 "콘텐츠 제작자, 유통사, 체험시설 등 모두가 상생할 수 있도록 함께 협의해 자율규제안 등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KOVACA는 취합된 사업주 의견을 1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재하는 실감형콘텐츠진흥위원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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