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길위에서 생각한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경영자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라도 장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태에 대비해서 만반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금 아무리 탁월한 방법으로 장래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순한 ‘희망적인 관측’으로 끝나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준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

철두철미한 준비를 가리키는 용어로 ‘지만’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어본다면 ‘가득히 지닌다’ 는 의미이나, 실은 ‘활을 당기어 화살을 쏘기 직전의 상황’ 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활시위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 형상’ 을 말한다.

여기에는 전해오는 고사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말기 월나라 왕 구천은 명신 범여의 간언을 듣지 않고 오를 쳤다가 대패하고 말았다. 범여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한 구천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을때 범여는 이렇게 말했다.

“지만하는 자에게는 하늘의 도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가 아니니 일단 철저한 준비부터 갖추고 기다리라는 충언이었다.

준비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으면서,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반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일을 그르친 후에야 그것을 후회하게 된다.

인천국제공항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의 이야기다. 40.2Km, 6~8차로의 도로를 건설하는 공사였다. 공사구간 가운데는 영종대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종대교는 세계 최초의 자정식(Self-anchored)현수교로, 메인 케이블에 행거를 걸어 다리의 상판을 지탱하는 방식의 다리다.

보통 메인 케이블은 집채만한 콘크리트 구조물(앵커)을 만들어 그안에 고정시키는 데 반해 자정식은 이런 구조물을 만들지 않고 현판에 매다는 방식이다. 구조물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사비가 적게 들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워 첨단공법이 요구된다.


이런 다리를 건설하려면 우선 다릿발을 만든 다음, 상판을 만들고 그 다음 걸어매는 순서로 일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다릿발을 만들려면 우선 기초부터 만들어야 한다. 또 이 기초를 앉히려면 바닷속에 들어가 기존의 부유물을 꽤 깊숙한 곳까지 걷어내야 한다. 최소 20m에서 30m까지 파내려 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퍼내는 준설토만도 엄청난 분량이다.

당연히 공사에 들어가기 전, 이 준설토를 어디에 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수만 대 분량의 준설토를 버릴 데가 없어 공사에 차질을 빚고 말았다. 환경문제를 생각하자니 바다에 갖다버릴 수도 없고, 육지에 버리자니 마땅히 버릴 데가 없었다. 설계도에는 수도권 쓰레기매립공단에 버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막상 그곳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사전에 협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동아건설이 농업 목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매립한 500만 평 규모의 동아매립지에 버리려고 농림부와 협의 했지만 그곳은 농사를 지을 땅이라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염분이 있는 준설토를 갖다버리면 농토를 버리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준설토 문제는 결국 반년 이상 해결이 안 된 채,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을 뿐 아니라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됐다. 인천국제공항과 연결되는 교량 건설이 자꾸 지연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관계기관 곳곳에 공문을 보내보았지만 하나같이 안 된다는 답변만이 되돌아왔다.

그런데 때마침 가스공사에서 송도 앞바다에 액화천연가스(LNG) 기지를 조성하기 위해 인공섬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협의를 해봤지만 새로운 준설토가 들어오면 작업도 지연되고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부정적인 대답이었다.

1997년 당시 도로정책과장이었던 필자는 당시 가스공사 한갑수 사장을 찾아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준설토 문제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물론 미리 차트며 자료를 꼼꼼하게 준비해 갔다.

한참 설명을 듣던 한 사장은 “실무 책임자인 과장이 이렇게 자료를 준비해 와 설명하는 걸 보니 믿음이 간다” 며 허락해 주었다. 오랫동안 골치를 앓아온 문제는 이렇게 해결됐다.

이 경험을 통해, 모든 사안은 설계부터 주도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쓰레기니까 아무 데나 갖다버리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대가를 너무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다른 일도 물론 그렇지만 건설공사는 공사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준비하는 데 쏟아야 한다. 적당히 준비를 하고 시작하면 일찍 시작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몇 배의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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