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국제정세에 격랑이 일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제2차 정상회담(하노이·2월 27∼28일)이 결렬로 끝난 이후 '포스트 하노이'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미국과 북한의 외교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당장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이도 이르면 4월에 개최되라는 예상이다. 현지에선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24~25일쯤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만간 열릴 정상회담에서 양자 관계 발전, 한반도 비핵화 문제, 지역 협력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에 평양을 방문, 당시에는 북한 지도부와 전면적인 접촉이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 다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대두됐다는 사실이다. 주목되는 일은 러시아는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독자적 정책을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미국과 조율하지는 않는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본격화된 '줄타기 외교'로 특징지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자력갱생"을 '포스트 하노이' 노선으로 내세운 이후 사회주의 연대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중국·베트남 등 우방국과도 더 밀착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한국에 대해선 연일 압박성 메시지를 던지며 '불가근불가원'식 거리를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이 올 연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통보한 가운데,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외교 공간을 확보하고 '장기전'에 대비해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전략적으로 긴 호흡으로 움직여온 북한 외교가 또다시 변곡점을 맞는 흐름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자신이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된 것을 축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지난 17일 답전을 보냈다고 노동신문이 1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가 북·중 수교 70주년이라는 점을 들어 "조선반도의 정세 흐름이 매우 관건적인 시기에 들어선 오늘 북·중 친선협조 관계를 더욱 귀중히 여기고 전진시켜나가는 것은 중대한 사명"이라고 했다. "가장 진실한 동지적 관계"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과도 밀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 베트남을 방문했으며,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북한이 대미 압박용 카드를 보여 온 점과 대비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간 신뢰'를 내비치면서도 미국을 압박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 시험을 현지 지도했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북·미 협상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 제재 완화에 목을 매 미국의 비핵화 '일괄타결'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발전을 '포스트 하노이' 대미정책과 국정방향으로 정하고 그 원칙에서 대응한다는 기본원칙을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시점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줄타기 외교'에 대비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중재역할'에 더 힘써야겠다. 여하튼 북한은 세계조류인 실질적 비핵화에 나서길 당부한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조치를 조기에 취해야만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생존과 번영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