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30년 전 공대생이 되면서 배운 전공서적 어느 구석에도 없었지만, 본격적으로 공돌이가 되기 시작한 3학년, 1992년 즈음, 반도체공학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3차 산업의 단 하나뿐인 기치가 '경박단소(輕薄短小)'였다.

엔지니어인 우리들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은 '경박단소'였다. 가볍고, 얇고, 짧고, 작게 만들면 시장이 생긴다.

경박단소가 세상을 지배한 30년 한 중간에 유비쿼터스 관련 연구개발이 활발하던 시대, 유비쿼터스와 성도 발음도 비슷한 유민착소(柔敏着小:유연/빠름/착용/작음)라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

더 이상 얇고 작게 만들기 어려우니 이제는 휘어지고 접히고 둘둘 말리고, 입고, 몸에 심는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 풍요의 시대 지나 공존의 시대로

이제 본격적으로 4차산업혁명에 전환기의 상생·공존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전의 경제학에서 말해온 풍요나 번영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4차산업혁명은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기존 3차산업에서 성립된 인터넷 기반 네트워크에 여러 분야가 융합되어 생겨나는 고부가가치 사회'라 정의하면서 인식의 범위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전문가로부터 정책 입안자,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AI, 딥러닝, 블록체인, IOT, ICT 융합 이라는 단어들을 덕지덕지 붙인 누더기 옷을 '실은 이게 바로 4차산업사회의 실체다'라고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3차산업혁명은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정보통신사회의 시작이었다.'라고 정의하면 쉽게 이해되는데, 4차산업혁명은 뜬구름 잡는 다보스포럼에서의 정의 말고, 실체를 규정할 만한 정의조자 마련되지 않았다. 정의가 되어야 이해도하고, 대책도 세우고, 기회를 만들어 이용할 것 아닌가.

대학에서 융합분야를 가르치면서도 적잖이 당황스러운 현 4차산업 전환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정돈한 현재 상황은 '결핍이 풍요를 섭리하는 지혜(乏理豊之智-乏理豊智)가 필요한 사회'라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이 빛을 발하는 대표적인 분야인 의료와 법률분야를 바라보자. 사람의 힘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데이터에 대한 통계 처리나 전체 데이터를 모수로 다루는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풍요를 넘어 방대해져 버린 데이터를 인력이 아닌 CPU들의 힘으로 처리해서 새로운 해결 방안 리스트를 만들어내는 이 분야의 기저에도 풍부한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 인력의 결핍을 해결하는 지혜가 들어 있다.

심지어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은 스스로와 대국을 펼치며 스스로 능력을 높이는 딥러닝의 양태를 취하고 있다. 풍요로운 대국 데이터가 없어도 스스로 그 결핍을 극복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2개월 전 북경 중의과학원에서 발표를 하고, 저녁 식사 후 왕푸징 거리에 있는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디디추싱앱'으로 택시를 불렀는데 외진 곳이라 30분이 지나도 어떤 차량도 오지 않았다. '교통수단의 결핍'이 온 것이다.

그때 통역 맡은 분이 10 위안 (1천700원)을 더 내겠다고 올리니 3분 만에 우리 앞으로 차량이 왔다. "아, 우리나라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교통 시스템이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통자원이 전반적으로 풍부하지만 일부 외진 곳, 밤늦은 시간에 발생한 결핍의 간극을 채우는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원전에서 풍부하게 쏟아져 나오는, 당장은 값싼 전기를 풍족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풍요를 섭리하는 결핍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왔다. 향후 10만 년 동안 우리 자손들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방사능 폐기물을 관리할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때문에 풍요로운 핵발전보다 조금은 불편해도 태양전지나 풍력발전과 같이 지속 가능성 높은 친환경 발전의존도를 높여가는 것도 풍요를 다루는 결핍의 지혜 중 하나다.

■ 4차산업 사회 '결핍 조절' 지혜 필요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4차 산업 사회 전환기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이전의 풍요를 이끌던 힘의 근원인 출산은 언제나 조정의 대상이었다. 386세대가 태어났던 1960년대에는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기르자' 뭐 이런 표어가 대세였고, 내가 초등학교 때 마주한 출산 관련 표어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인구가 늘어나니까'라는 대명제 아래 건설·교육·금융·제조 전 분야가 풍요롭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인구 절벽을 마주한 현재 상황인데 결핍을 만났으니까 출산 장려금을 더 많이 지급하겠다는 생각은 풍요를 다루는 결핍과는 동떨어진 생각이다.

누가 봐도 망해가는 기업에 돈을 쏟아 붓겠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 '풍요를 위해 새로이 자금을 투입하면 또 다른 풍요가 생기겠지'라고 기대할 수 있었던 2차·3차 산업시대에는 통했을 것 같다.

결핍이 풍요로움을 지혜롭게 섭리해서 우리 다음 세대가 창출해 내는 물질적·사회적 가치가 이전의 3차 산업 사회에서 만들어 내던 부가가치를 넘어서게 해야만 우리의 미래가 보장되는 전환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구절벽과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4차 산업 사회로의 전환을 유도한 것은 아니지만, 4차 산업의 기반 기술이 마련되고 있는 지금, 기존의 풍요를 지혜롭게 컨트롤하는 결핍의 측면에서 '결핍'의 한 축을 절묘하게 감당하고 있는 것이 감소하는 인구문제이다.

출산을 늘리면 된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인구절벽을 마주한 어떤 나라도 떨어지는 출산율을 회복시킨 사례가 없다. 저출산의 결핍을 해결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4차 산업 분야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 외에 없다.

풍요가 지배하던 산업분야를 지혜롭게 조절하는 결핍에 대한 기술개발 말이다. 우리는 현재 4차 산업 사회의 문턱을 넘고 있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고, 더 적은 수의 다음 세대가 더 많은 고령층을 고통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기술개발, 주도권 장악에 힘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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