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길위에서 생각한다

자연재해로 인한 도로피해 이야기가 나오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2002년에 발생한 태풍 ‘루사’ 다. ‘루사’는 2002년 늦여름, 한반도에 상륙해 5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와 124명의 인명 피해를 남긴 악명 높은 태풍이다. 또 1904년, 한반도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1일 강수량을 기록했을 정도로 많은 비를 동반했다.

기억의 시곗바늘을 돌려보면, 필자가 도로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2년 9월1일 토요일 오후, 태풍 ‘루사’ 가 남부지방에 큰 피해를 주지않고 동해안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소식에 긴장했던 마음을 한숨 돌리며 도로 관리과 직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받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태풍 ‘루사’ 가 몰고 온 빗줄기가 거세지는 바람에 그 여파로 강릉시 왕산면에 산사태가 발생해 국도 35호선이 두절되고 왕산면이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사무관 한 사람과 함께 현장으로 내처 달려갔다. 또 당시 C차관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강원도로 향할수록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되는 4차로 영동고속도로 주변 절개면의 흙이 쏟아져 도로도 엉망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횡계나들목(IC)부터 통제되어 더는 갈 수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C차관과 나는 가면서 주변의 관련기관 책임자들에게 비상연락으로 각각 할 일을 확인시켰다.

한시라도 빨리 현장 복구를 할 수 있도록 거리가 먼 홍천, 수원, 의정부까지 긴급 복구용 자재와 장비를 동원시키고, 주변의 지방도 등을 이용해서 강릉으로 향하기 위해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흙더미와 돌더미들이 도로를 덮치는 바람에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그럼에도 고속도로로 진입해 수해복구 작업이 한창인 현장으로 들어가 우선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만들어지면 돌더미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악전고투 끝에 강릉엔 도착했지만 사고현장인 왕산면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수십미터나 잘려 진입이 불가능했다. 가까스로 험한 산을 넘고 나니 더 큰산이 버티고 있는 셈이었다.

구난을 위해 들어갔던 구조대들도 빠져나올 수가 없어 마을사람들과 함께 고립된 처지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할 수 없이 사고현장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현장에 출동한 강릉 국도유지관리소장에게 도로 복구가 빨리 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하라는 지시를 한 후 겨우겨우 강릉시청으로 향했다.

계속 내리는 장대비로 온통 물바다가 된 강릉 시내를 지나 시청으로 들어가니 시청 또한 전쟁터였다. 사상 초유의 호우로 강릉시 오봉댐이 무너지기 직전이라 주민 대피령이 내려지고 시청 직원들은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강릉 시장뿐만 아니라 소방서, 군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비상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숙의를 했지만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밖엔 없었다.

C 차관은 엄밀히 따지면 자기소관도 아닌 일에 생명의 위협도 감수해 가며 솔선하여 강릉시장실에서 관계자들과 비상회의를 주재하면서 상황을 지휘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사에 연락하여 절박한 상황을 알리는 등 밤샘작업을 하며 사태수습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 강릉시청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오봉댐이 무너지면 시청건물의 안전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봉댐 붕괴도 큰 문제였지만 도로국장인 내 입장에선 왕산면 산사태 복구도 시급한 문제였다. 일단 왕산면 복구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횡계영업소를 연락본부로 결정하고 다시 횡계로 발길을 재촉했다. 계속되는 폭우로 인해 자동차 바퀴가 반이나 잠기는 도로 위를 달리면서 살펴보니 수해복구가 한창인 영동고속도로 위엔 계속 흙더미와 돌더미가 무너져 내려 통행이 더욱 어려워져만 가고 있었다.

900mm의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낸 후 자정쯤부터 다행히 빗줄기가 잦아들어 오봉댐이 무너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도로사정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새벽녘이 돼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와도 고속도로가 개통되지 않아 횡계영업소에 대기한 복구장비는 꼼짝없이 발이 묶여 있었다.

단전에, 전화 불통에, 휴대폰도 터지지 않아 어딘가로 연락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 상황에 결혼식 때문에 원주에서 강릉까지 가야 하는 신부도 있었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겨우 차량이 지나갈 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경찰 순찰차를 앞세우고 복구자재를 실은 트럭을 인솔해서 다시 강릉으로 가서 왕산면 현장에 도착했다. 도로를 잇기 위해 흙과 자갈을 쏟아 붓고 있는 중이었지만 침수로 흐물흐물해진 땅은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공간, 진흙탕에 푹푹 빠지며 걷다보니 몇 군데 도로는 반 이상이 움푹 꺼진 데도 있었다. 정말 얼마나 큰 태풍이었는지 실감이 났다. 지대가 낮은 곳은 교량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곳도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남쪽에서 올라온 구조대들도 도착해서 매몰된 차량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복구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부는 강원도를 포함한 피해지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4조원이 넘는 추경예산을 편성해 이재민 지원에 나섰다.

이 ‘특별재해지역’ 은 루사 때문에 신설된 제도다. 그 이전까지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자연재해대책법에 근거해서 ‘재해극심지역’ 을 지정했다. 그러나 재해극심지역은 지정과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 없고 또 홍수, 호우 등 자연재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국가가 보상이나 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태풍 ‘루사’ 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들어 폭우와 폭설이 유난히 잦아졌다. 199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엘리뇨 현상, 다시 말해서 적도 부근의 해수온도가 주변보다 2도에서 10도 정도 높아지는 현상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기상이변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엘리뇨란 말은 스페인어로, ‘작은 예수’, 또는 ‘어린아이’ 라는 뜻이다.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나타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에선 평화가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공포스런 자연재해를 몰고 오는 존재다.

앞으로도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현상으로 자연재해와 기상이변이 빈번해질 것이다. 따라서 도로 같은 국가 기간시설의 파괴 또한 더욱 우려된다. 이에 대비한 도로건설과 함께 철저한 재난대책이 필수적인 건 이 때문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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