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성 대변인 담화→유엔 사무총장에 편지→유엔서 기자회견

▲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미국 정부가 자국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를 압류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국제사회를 상대로 전방위 여론전에 나서 눈길을 끈다.

북한은 지난 9일 미 법무부가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압류 발표와 몰수를 위한 민사소송 제기하자 닷새 뒤인 지난 1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외교전의 첫 포문을 열었다.

대변인 담화는 미국의 자국 화물선 압류는 "6·12조미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 "후안무치하고 불법무도한 강탈행위"라며 즉각 돌려보낼 것을 촉구했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외무성 대변인 담화라는 비교적 수위가 높은 형식에 비난 표현의 강도도 높인 것이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에서 이 사안을 이슈화하는데 팔을 걷어붙였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 17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의 압류조치는 "유엔 헌장을 난폭하게 짓밟은 주권침해 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미 국내법에 기초한 대조선 '제재법'과 같은 일방적인 제재는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어긋나는 비법적 행위"라며 "주권국가가 그 어떤 경우에도 다른 나라 사법권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은 보편적인 국제법적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사는 21일(현지시간)에는 이례적으로 유엔본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까지 열고 국제사회를 향해 미국의 '부당성'을 알리는 여론전에 나섰다.

그는 어니스트호의 압류를 불법적이고 터무니없는 행위라며 미국의 대북제재를 '일방적 제재'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해에도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제재가 이어졌지만, 이번과 같은 외교전을 펼친 적은 없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몰수가 갖는 경제적, 외교적 의미가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화물선은 미국 정부가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압류·몰수 절차에 들어간 첫 사례에 해당한다.

최근 미정부의 대북제재는 북한을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개인과 기관에 지정되거나, 북한과 교류한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제3국 기업에 대한 제재로, '세컨더리 보이콧'(제삼자 기업·개인에 대한 제재) 형태로 이뤄져 어찌 보면 상징적인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양국이 비핵화 협상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다며 치열한 기 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나온 화물선 압류조치는 미국의 해상무역 봉쇄 의지를 보여준 동시에 앞으로 대북제재의 쓰나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북한의 절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법무부의 압류 발표 시점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한 지 9시간도 안 돼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북한의 자산인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압류는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절대로 방치할 수 없는 인식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건설'을 선언한 북한 입장에서 대형 화물선의 몰수는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불법 환적 등 우회로를 찾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북한에는 타격일 수밖에 없다.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1만7천t급 선박으로 건조된 지 30년이 됐지만, 노후한 선박이 대부분인 북한에선 여전히 자산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총 길이 176.6m, 폭 26m에 최대 2만7천881t을 적재할 수 있어 크기나 운송 능력 모두 북한 내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주력 상선에 속한다.

특히 북한의 주력 수출 품목인 석탄을 비롯한 광물의 운반에 사용되면서, 대북제재로 광물 수출길이 막히기 전까지 북한의 '외화벌이'에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외교적 노력이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미국의소리(VOA)방송과 인터뷰에서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행적은 명백한 유엔 결의 위반으로 미국이 유엔 결의에 근거해 올바른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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