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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택의 세상만사] 검경 수사권 밥그릇 싸움칭찬합시다 운동중앙회 회장
  • 일간투데이
  • 승인 2019.05.28 11:04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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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은 국회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한번 반대의 뜻을 밝혔다. 앞서 문 총장이 이의를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할 뜻을 비치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권,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을 개선하고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에 관한 의견 수렴을 하겠다”고 일부 물러섰으나 그 정도로는 반대의 뜻을 접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현안이 된 가운데 검찰은 정보경찰을 2016년 총선 판세분석에 동원했다는 혐의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구속했다. 경찰도 이에 질세라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고발 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임은정 검사는 김 전 총장이 2015년 당시 부산지검 검사의 고소장 위조를 적발하고도 징계하지 않고 사표를 수리했다며 그를 경찰청에 고발했다. 검경은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돼 이전투구를 벌이느라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정치적 독립도, 국민 공감도 없어

문 총장은 “통제하지 못할 권한을 경찰에 주는 것은 진단과 처방이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권한을 가진 지금까지 검찰은 어떠했는가! 문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영원한 숙제’라며 남 얘기처럼 말했다. 그가 얼마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통제하지 못할 권한을 경찰에 넘겨주는 데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는 대통령으로부터 검경의 독립을 확보할 방안은 담겨 있지 않다. ‘통제하지 못할 권한’이 검찰에 있다가 경찰에 가는 것이 검경으로서는 사활을 걸고 싸울 일인지 모르겠으나 국민으로서는 그 권한이 검찰에 있든 경찰에 있든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견제 없는 검경 인사권을 갖고 있는 한 수사권이 어디로 가도 정치적 중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무엇보다 대통령의 검경 장악에서 온다.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권한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려고만 하니 법 개정의 대의(大義)는 사라지고 검경의 갈등은 국민으로서는 점점 더 공감하기 어려운 자기들끼리의 싸움이 되고 만다.

‘수사 착수와 수사 종결을 분리해야 한다’는 문 총장의 문제의식은 틀리지 않다. 경찰 수사를 견제하는 기능이 필요한 건 검찰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수사지휘권’이란 명칭과 개념이 시대 변화에 맞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러한 견제와 검증의 기능은 유지돼야 한다. 문제는 그간 검찰의 수사지휘가 온전히 피의자 인권이나 범죄 수사를 위한 게 아니었다는 데 있다. 수사지휘권을 검사가 연루된 사건 등에 오·남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검찰은 원칙을 말하는 데 그치지 말고, 경찰 수사에 대한 견제를 어떻게 민주적·합리적으로 할 것인지도 말해야 한다.

■경찰 수사 견제… 민주·합리적으로

나아가 ‘수사 착수-종결 분리’ 원칙은 검찰 조직에도 철저히 적용돼야 한다. 문 총장은 “검찰의 직접수사 총량을 대폭 축소하겠다”며 “재정신청 제도를 전면 확대해 검찰의 수사 종결에도 실효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취임 후 대검찰청 인권부 설치 등 내부 통제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도 했다.

“일부 중요 사건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고, 억울함을 호소한 국민을 제대로 돕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것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문 총장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검찰은 수사권·기소권 분리에 버금가는 자체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또 ‘살아 있는 권력’은 봐주고 ‘죽은 권력’은 과잉 조사한다는 비판이 더는 나와선 안 된다. 문 총장이 양복 재킷을 벗어 흔들며 “정치적 중립은 옷(검찰)을 보고 말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흔들린’ 책임은 누구에게 물으란 말인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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