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길위에서 생각한다

저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나 로마처럼 천년만년 영광을 누릴 줄 알았던 강대국들이 망하는 이유는 천재지변이나 외국의 침략이 아닌 교만과 안이이다.”결국 퇴화의 치명적 원인은 자기 만족에서 오는 안일함이라는 의미일 터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진화와 발전은 무모하다 싶은 도전정신과 모험심이 모태가 됐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불가능에서 가능으로의 신화는 언제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노력 속에 결실을 맺었다. 아직도 우리들 가슴속에 벅찬 감격으로 남아있는 수많은 신화들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다.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우리나라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경제개발의 불씨를 당긴 우리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는 건설 당시부터 많은 일화를 남겼다. 특히 400Km가 넘는 고속도로를 불과 2년 반 만에 건설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었던 데는 도로 건설현장에서 땀 흘린 노동자들의 공도 크지만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중요하고 커다란 나랏일’로 생각했던 토지 소유주들의 협조 또한 큰 역할을 했다.

당시 토지수용을 할 때 대대로 물려받은 문전옥답을 도로 부지로 내주어야 했던 촌로들은 자기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나랏일인데·····’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도로 건설은 나라의 일이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했으며 마을에 길이 나면 마을 전체가 발전하는 일이라 해서 도로에 편입되는 개인 소유의 땅을 기꺼이 무상으로 기부하는 이들까지도 있었다.

이를테면 도로를 2차로로 개수하던 시절, 마을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길이 마을과 연결되어야 한다며 길이 자기네 마을을 지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던 일도 종종 있었다. 그뿐인가, 도로를 건설하거나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부역을 시켜도 별다를 불평불만 없이 국민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여기며 순순히 따르던 것이 그 시절의 정서였다. 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할 수 없게 되면 감독자에게 사정사정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순박한 인심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어디까지나 추억이 되고 말았다. 도로의 설계가 고규격화되고 국도의 간선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시설과의 접속을 통제하게 되면서, 또 재산권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달라지고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토지 수용은 도로건설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됐다.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특성상 꼬불꼬불한 길이 아닌, 속도를 낼 수 있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득이 산을 깎아 길을 내야만 한다. 또한 하천을 횡단하거나 농지를 가로질러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정은 이렇지만 환경부에서는 녹지자연도 1등급이다, 절개 면적이 커서 자연 훼손이 심하다, 상수원보호구역 인접지역이다 등등의 사유를 들어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게 되면 노선 선정과 실시설계에서 환경영향평가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북 봉화군과 울진군을 연결하는 ‘서면-근남간 도로확장 및 포장공사’는 설계 완료 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되지 않아 사실상 공사 시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물론 환경을 보존하자는 근본취지에는 백번 공감을 하지만 ‘개발없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환경보존만을 국가 전체의 정책으로만 선택할 수 없는 현실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건설당국 역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친환경적인 설계와 시공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또 도로 노선을 설계할 때 농림부와 농지전용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설계 담당자들이 고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로 노선을 설계하다 보면 전체 노선 계획상 할 수 없이 농지를 가로지를 수밖에 없는데 농지 보전을 목적으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협의가 난항을 겪는다. 농림부의 근본정책이 농지 보전이므로 농지를 지키려는 노력은 당연하지만 도로건설이 단지 건설교통부의 소관 업무만이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관련된 중차대한 일이라는 걸 고려해서 좀더 유연한 대응을 해주었으면 한다.

어려움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문화재청에서는 문화재 발굴이 예상되는 지역이므로 안 된다고 하고, 일반 주민들은 새로 건설되는 고속도로 설계기준이 고규격화되어 마을 앞을 지나가면 시야가 가려진다고 반대하고, 동네 산을 깎으면 정기가 훼손되어 동네를 망친다고 양보를 하지 않고, 조상의 묘가 도로에 편입돼 상하게 되면 집안이 망한다고 반대하기도 한다.

어찌어찌 막상 설계가 끝나서 공사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도 용지 보상비가 적다면 땅을 내놓을 수 없다고 하거나 도로가 건설되면 주변 여건이 바뀌어 상권에 피해가 있다고 민원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도로의 방향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상반된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은데,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수용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끝까지 집단행동을 하여 수백억 원을 투자한 SOC 사업의 발을 묶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자신의 손익 여부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마는 모두 자기 이익만 챙기려 든다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추진해야 할 사업들은 허공을 맴돌 수밖에 없다. 또 민원을 최대한 해결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행복한 기억도 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만 2년이 지난 1997년, 필자가 도로정책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인천광역시와 경상북도를 비롯한 전국10개 시· 군· 구와 의회에 건설교통부 장관 명의로 감사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지역이기주의 민원을 해결하고 국가정책에 협조한 지방자치단체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 것이다. 이 편지 한 장엔 지자체의 권위와 행정의 상호협조 관계를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런 일은 지자체 실시 이전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잘 하면 전화를 통해 격려하거나, 표창장을 준 적은 있었지만….

이 편지는 필자가 당시 이환균 건설교통부 장관을 수행해 중앙고속도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귀경하는 헬기 안에서 건의를 한 데서 비롯됐다.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니, 즉석에서 좋은 생각이라 하여 시행하게 된 것이다.

도로건설과 관련해서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하는 현실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절대적인 협조없이 도로 건설공사를 추진하기란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주민 여론을 내세워 중앙정부와 대립해 온 지자체들이 적지 않았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진행하면서 고육지책으로 특별법까지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젠 웬만한 도로 건설사업에도 국제입찰이 시행되고 있어 외국업체가 시공하게 될 경우, 각종 민원이 제때 해결되지 않아 차질을 빚게 되면 국제문제로 번질 우려마저 생겼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협조가 중요하다. 이둘의 관계는 대립관계가 아니다. 보완과 조화와 협력의 관계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감사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생의 보람을 느꼈던 그때를 추억해 보며, 앞으로도 국가발전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동반자로 아름다운 관계를 다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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