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민주복지국가는 어떻게 구현될까. 법치에 바탕한 질서다. 약육강식이 아닌 자유 평등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다. 공동체는 법으로 유지되고, 덕성이 있어 인간 존엄성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법은 공동체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담보 장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패가 된다.

현실은 아니다. 21세기 초엽 대한민국은 무질서, 아니 '무법천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실례를 보자.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및 중간지주사 설립 등을 위한 현대중공업 주주총회가 열렸던 5월 31인 울산대학교 체육관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회사 측은 당초 이날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예정됐던 주총이 노조의 점거 농성과 극심한 반발로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장소를 바꿔 울산대 체육관에서 주총을 개최한 것이다.

주총 후 일부 노조원들은 체육관 내부에 소화기를 뿌리고, 주주들이 앉았던 접이식 의자를 집어 던지는가 하면 유리문을 부수고 무대 벽면을 파손, 큰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주총에서 분할계획서가 승인됨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 2개 회사로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 본사를 서울로 정한 한국조선해양은 자회사 지원·투자·연구개발(R&D) 등을 수행하고, 울산에 본사를 두는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플랜트·엔진기계 등 사업부문을 전문화해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론 과제가 적잖다. 일단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수주잔량 기준 세계 1,2위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이 마무리되면 독과점 논란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두 회사의 전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은 21.2%에 달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해외 공정거래 당국의 결합 심사 통과도 남겨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과 기업결합을 추진하는 배경은 명확하다. 국내 조선업계의 국제경쟁력 강화다. 글로벌 조선 업황은 지난 2015, 2016년 극심한 수주 절벽에 시달렸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빅3' 체제에서 발생했던 국내 업체 간 출혈 수주 경쟁도 수익성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해 못할 게 있다. 바로 정부 태도다. 노조의 불법파업 현장에 정부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물 건너 갈 경우 조선업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마땅한 중재 또는 대응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손을 놓은 건 이뿐만 아니다. 최근 공유차량 서비스 '타다'와 택시업계 간 갈등으로 분신 사망 사태까지 발생했음에도 정부의 존재감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뒤늦게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법인분할 반대 파업과 주주총회장 점거와 관련, 노조는 관계법령을 준수하면서 노동기본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폭력과 점거 등의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교과서적 말을 했다. 정부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엄정히 대처하길 촉구한다. 법과 원칙 실행으로 정부의 존재가치를 보여야 한다. 노조도 나라경제를 생각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