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스포츠 칼럼니스트

[일간투데이] 한국의 프로복싱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단체가 사분오열, 여러 군데로 쪼개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가당착적 변칙흥행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진정한 팬과 관계자들을 더욱 실망시키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언제까지 그런 악순환이 계속될지 실로 앞날이 답답하고 캄캄하다.

얼마 전 어느 지방도시에서 이른바 국내타이틀매치가 벌어졌다. 주관한 단체도 생소한데다 타이틀전도 한두 체급이 아닌 수개 체급. 문제는 타이틀전에 나서는 선수의 자격이 함량미달이라는 데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적과 커리어의 선수끼리 타이틀전을 치른 것이다. 어떻게 해도 곱게 보아질 리 만무하다.

‘해도 너무 한다’는 비아냥을 받기에 충분하다. 타이틀전에 나서는 선수 중에는 데뷔전을 갖는 선수도 눈에 띄었다. 전적을 가진 선수도 5전 이내가 대부분이고. 그처럼 미미한 커리어와 전적의 선수들로 하여금 국내의 정상, 챔피언 자리를 가리게 한다는 건 이전 규정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처사가 분명하다. 국내타이틀매치라면 말하나마나 국내 정상, 최고를 가리는 싸움이다. 당연히 자웅을 겨루는 선수들은 국내의 톱클래스들이야 마땅하다.

■납득할수 없는 규정·상식

랭킹을 발표하는 이유도 그렇다. 챔피언 자리를 넘보는 순위는 곧 랭커 간의 라이벌의식은 물론, 팬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시너지효과를 위함이 아닌가.

한데 커리어가 미천할 뿐 아니라, 전적도 미미하거나 갓 데뷔전을 갖는 선수가 타이틀전에 나선다면 어떨까? 과연 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더구나 랭킹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단체가 임의로 선정한 선수끼리의 타이틀전이다. 한마디로 동네 굿이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타이틀전의 권위가 먹칠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챔피언십에 나가려면 적어도 10라운드를 뛸 수 있는 선수라야 한다. 종전 관례라면 8라운드를 뛴 선수도 랭킹 10위권에는 들 수 있다. 따라서 도전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자격도 부여됐다. 하지만 데뷔전을 갖는 선수, 전적도 5전 이내일뿐더러 4, 6라운드의 경험밖에 없는 선수를 타이틀전에 나가게 한 예는 일찍이 없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도 팬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로복싱을 관리 운영하는 단체가 무려 7군데로 쪼개져 있는 것도 변칙흥행을 불러들인 데 한몫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단체가 군웅할거(群雄割據)하다 보니 엄격한 통제가 소고삐 풀리듯 느슨해져버렸다. 단체가 하나뿐이었을 때 그토록 잘 지켜지던 규정이 여러 군데로 쪼개지면서 그만 억제, 통제력을 잃고 만 것일까?

스스로 약화(弱化)를 자초한 7군데의 분할단체를 살펴보면 정통 KBC(한국권투위원회)를 비롯해 KPBF(한국프로복싱연맹), KBA(한국복싱협회), KBF(한국복싱연맹), KBM(한국복싱매니지먼트), KJBC(한국제주복싱평의회), KABC(대한모든복싱평의회) 등이다. 그런대로 활발한 단체는 KBM과 KBF, 제주도에 근거를 둔 KJBC 정도랄까. 겨우 연간 두세 번의 매치가 고작인 기타 단체는 그 존재의 의미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만큼 활동이 미미하다.

■분열… 억제·통제력도 잃었나

가장 우려되는 건 단체, 커미션의 역할이다. 통제기구로서 단체인지, 흥행을 병행하는 프로모터인지 그 경계가 애매모호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흥행을 감독 관리해야할 단체가 아예 내놓고 버젓이 프로모터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의례 지켜야 할 규정을 무시하고 엿장수 맘대로 안일한 흥행을 자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마디로 프로모터, 흥행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릴 까닭이 없다. 여기서 바로 컨트롤 타워인 커미션의 역할이 절실하다. 엿장수 맘대로의 흥행사로 하여금 제반규정을 어기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는 것, 그건 곧 팬들에게 안심하고 공정한 경기를 관전하고 즐기는 '볼 권리'를 보호, 보장하기 위한 것임은 얘기히니미니다.

커미션은 팬의 볼 권리를 보호, 보장하는 단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커미션을 주정부에서 운영,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필리핀에서도 그 제도를 그대로 도입, 아예 정부조직으로 운영, 관리되고 있다.
팬은 왕이다. 관중 없는, 외롭고 쓸쓸한 '4각 정글'이 되지 않으려면 팬을 무시한 변칙을 지양하고 규정, 규칙을 지켜나가는 게 급선무다. 그게 곧 침체 프로복싱을 살리는 길이다.

-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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