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을 향한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분기탱천(憤氣撐天).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을 대표한 선량(選良)으로서 일은 하지 않고 ‘돈만 축 내기 때문’이다. 맞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한지가 5개월이 지났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들은 매달 1천200여만 원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국회’라는 오명에다 설상가상 막말 퍼레이드까지 벌이고 있으니 여론의 눈총이 매섭다.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이 부적격한 국회의원을 임기 중 소환해 투표로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국민 10명 중 8명이 찬성한다는 여론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3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국회의원을 퇴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므로 찬성한다'는 응답이 77.5%였다.

아닌 게 아니라 20대 국회는 식물도 아닌 ‘무생물’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법에 따라 열려야 하는 2월과 4월 임시국회는 열리지 않았다. 4월 중반 이후부터는 선거제·검찰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자유한국당은 4월 말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장외로 나가버렸다.

■與 정치력 결여, 野 수권의지 의문

설상가상 6월 임시국회마저 열리지 않으면서 강원 산불, 미세먼지 대응 등을 위한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보완 입법이 시급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근로기준법 개정안), 최저임금 결정체계 변경(최저임금법 개정안),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등 장기표류 중인 민생법안 처리에 빨간 불이 켜졌다. 뒤늦게 여야 간 국회정상화 협상이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오는 30일로 끝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및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기간 연장 문제가 여전히 쟁점이긴 하지만 큰 틀의 합의는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시점 복기(復碁)해보자. 긍극적으론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치력 결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국회정상화 국면에서 한국당이 보인 태도는 과연 수권을 꿈꾸는 제1야당이 맞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실망이다. 패스트트랙 문제는 여야4당 합의를 통해 이미 법률적으로 절차가 진행된 사안이다. 이제는 관련 특위에서 논의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다시 이 문제를 꺼내들고 원점 검토와 사과를 요구하며 이를 국회정상화 전제 조건으로 결부시키는 건 설득력이 약했다.

■다산 “개혁하지 않으면 망국” 우려

여야, 특히 한국당에 당부한다. 이후로도 국민공론의 장인 국회를 내팽개쳐선 안 된다. 국민의 절반정도는 국회 파행의 책임이 한국당에 있다고 보고 있잖은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달 24∼25일 전국 성인 1천2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국회 파행 사태와 관련해 '한국당에 책임이 있다'는 답변은 전체의 51.6%로 집계됐다. 여당인 민주당 책임이라는 답변 비율은 27.1%에 그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 본령 회복을 촉구한다. 오랜 경기불황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풀기 위해선 머리를 맞대고 고뇌해야 할 당·정·청, 그리고 야당의 협력 모델이 요청되는 절박한 시기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부터 시대의 책임을 느끼고 달라져야겠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이 같은 정국 상황은 예고됐다고 하겠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일들이 야권 반대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예견 가능한 일이었잖은가. 그럼 현실적 해법은 무엇일까. 협치 정신의 복원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전 정부와 결을 달리하는 ‘사이다 리더십’을 선보이며 곳곳에 새 바람을 몰고 다녔다. 그러나 그 바람은 야당부터 껴안는 데서 출발해야 했다. ‘몽니’ 부리는 야당 습성을 알고도 속으면서….

야당도 국리민복을 위한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후기사회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법과 제도 개혁의 청사진인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짓겠다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외쳤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충신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만 있겠는가(及今不改 其必亡國而後已 斯豈忠信志士 所能袖手而傍觀者哉).” 일하지 않는 국회,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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