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교수

▲ 선문대 명예교수 시인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새가 머리에 내려와서 집을 지으려고 할 때 쫓을 수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구체적 언행으로 옮기고 싶을 때 자제할 수는 있다. 자기 마음을 건전하게 부려서 쓰는 여하에 따라서 인격자와 비인격자로 가름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김원봉의 의열단 활동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을 본 뒤 "남북 간 체제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그간 김원봉에게 강한 애착을 보여 왔는데, 청와대 관계자는 "김원봉은 복한 정권에 참여했지만, 결국 숙청된 인물"이라며 "애국과 보훈의 대상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는 6월 10일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추서 가능성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서훈을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이념대립양상으로 확대되자 청와대가 상황정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서훈 추진… 이념대립 양상 확대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독립유공자지만 북한 정권에서 장관을 지내고 6·25 전란 때 김일성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언급했다. 그는 김원봉이 광복군에 참여한 것을 강조하면서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했다.

6·25 전몰장병을 기리는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 남침에 관여했던 인물을 '국군의 뿌리'로 해석한 것이다. 수많은 국군과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가해자를 어떻게 국군의 뿌리로 왜곡할 수 있는가?

김원봉은 미군 주둔을 반대하는 성명을 홍명희 등과 함께 발표한 핵심 공산주의자인데, 어찌하여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고 헛소리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추켜세우는 김원봉이 과연 '국군의 뿌리'가 되는지, 서훈을 해도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원봉(1898-1958)은 중국공산당 지도자 저우언라이의 설득에 넘어가 중국 북부의 중공군 공산주의자를 지원했다. 김원봉과 조선의용대를 국군과 한·미동맹으로 연결하는 것은 억지주장이다.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 용대가 광복군에 들어온 것은 1942년 여름이었다. 임시정부를 비판했던 김원봉은 1930년대 말 중국 장제스 정부로부터 임시정부와 항일합작을 종용받았지만 뿌리쳤다가 장제스 정부가 재정지원을 임정으로 단일화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뜻을 굽혔다. 1941년 6월 조선의용대병력의 80% 이상인 화북지대가 중국공산당 관할지역으로 넘어가자 그는 남은 병력을 이끌고 할 수 없이 광복군에 합류했다.

■전쟁범죄·독립유공 '천사만려'

조선의용대는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된 뒤에도 광복군 주류와 섞이지 않았다. 병력도 해방 직전 제1지대(50여명)는 제2지대(200여명) 제3지대(300여명)에 비해 떨어졌다.
미국은 조선의용대 출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1945년 봄 미국 OSS(전략정보국)가 한반도침투 특수훈련을 실시했을 때 대상자들은 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에서 선발됐다. 미군은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던 이범석 제2지대장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었다.

국군창설에 기여한 광복군도 제2지대와 제3지대 출신이었다. 이범석이 대한민국 초대 총리 겸 국방부장관이 되자 육군사관학교에 대거 입교해 훗날 대한민국 국군의 중추가 됐다.

김원봉이 이끌던 제1지대 출신으로 국군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한 사람이 없는데도 문 대통령은 마치 김원봉 부대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한 것은 적절치 않다.

5천만 국민을 거느린 국군통수권자 대통령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의 무거운 말 한마디에 나라의 존폐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6·25 전쟁범죄자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대우하려는 문 대통령의 처사는 천사만려(千思萬慮)해도 그릇된 처사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두루뭉수리 넘어간다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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