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태 삼국유사연구원장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논하는 자리에 꼭 등장하는 게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하루 24시간을 사관이란 직분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그 양의 방대함에 놀란다. 또한 그 자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의 특징은 보관과 기록 그리고 누구도 열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도 조선왕조가 계속 유지됐다면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열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비밀스럽게 밀봉된 내용들은 후대 활용의 목적도 없이 무작정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왕을 중심으로 하는 기록의 한계는 당시 사람들 역사의 뒤안길에 살아왔던 노비, 백정, 무당 등 8척은 물론 대다수 백성들의 삶을 알 수 없다는 사실도 이 책이 가진 한계이다. 조선조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손으로 남긴 기록보다 조선조 말 선교사들에 의한 여행담이다.

■'유교국가' 조선왕조 위상 요약

그 가운데 소중한 기록은 조선에 살다 떠난 하멜과 그 동료들이 남긴 기록이다. 1653년 8월 16일 스페르베르버(Sperwer)호의 제주도 부근 난파와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 일행의 표류 기록인 '하멜일지' '하멜표류기' '하멜보고서' '난파 경위 진술서'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17세기 이방인에 눈에 비친 조선의 생활상의 기록으로 우리에게는 소중한 자료다.

먼저 종교와 사상을 살펴보면 백성들은 '여러 우상'을 섬기는 이교를 신봉한다고 전제하지만 실제로는 '우상보다는 그들의 권세가들을 더 숭상하고, 고관과 양반은 우상숭배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 자신이 우상 위에 존재하는 양 자만심이 강했다'고 조선왕국의 유교국가로서의 위상을 요약하고 있다.

무격신앙에 대해선 서너 대목이 발견되며 무당이 길흉화복의 주제자로 신앙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주는 등의 직능이 있다. 특히 질병을 고쳐주는 기능이 강조됐다. 민중들은 흔히 장인과 점쟁이들을 찾아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실행한다고 했다.

성리학자들의 장례모습으로 사대부가 죽으면 고인의 자식들은 3일간 곡을 해야 한다. 3일 동안 유자녀는 승려와 같은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하며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부인과 동침을 해서도 안 된다. 장례(葬禮) 기간 동안에 유자녀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적출(嫡出)이 되지 못한다. 유가족들은 장례 기간 동안 싸워서도 안 되며, 화를 내어서도 안 되며, 술에 취해서도 안 된다. 유족들은 장례 기간 동안 죽장(竹杖)을 짚고, 거친 삼베옷을 입으며 씻지도 않아 다른 이들과 구별된다. 그래서 유족들은 마치 혼혈아처럼 검다.

하멜이 살던 당시에도 무속인들과 불교 승려들은 교류하며 종교적인 동업관계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 편안히 저승에 갔는지 좋은 곳에 묻혔는지 말해준다. 사람들은 그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시신은 항상 조심스럽게 매장하고, 지관들이 물이 흘러들어올 수 없는 산에 장지를 정하고 있다.

하멜표류기는 많은 분량과 내용면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불교다. 일행이 평소 승려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 만큼 불교에 대한 친화력도 높았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우상' 즉 불상을 모셔 놓은 사찰은 '근래에는' 사용되지 않거나, '1662년 현종에 의해 파괴됐다.

■불교·기독교 '공통성' 부각 의도

그간 왕궁에서 후원해 오던 수도원도 폐쇄되는 등 사찰의 수요를 줄이고 사원 경제를 약화시킨 조선 왕조의 배불주의 정책을 재확인할 수 있다.

특기할 점은 불교와 기독교와의 공통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확연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승려들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원래 만인이 다 한 가지 언어로 통했었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탑을 세워 그걸 타고 천국으로 기어 올라가려고 기를 쓴 나머지 온 천지가 이처럼 변해 버렸노라고 했다.'

이는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 시켜 멀리 흩어지게 함으로써 탐 건축이 중단되게 했다는 구약성서 창세기 바벨탑 사건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한 그 지명은 '신이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라는 뜻이다 (창세기 11:19)는 결론에서 알 수 있듯 하멜 일행은 불교와 기독교 신앙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여러 종교는 그 진리가 상통한다는 백교회통(百敎會通)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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