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양국 간 타협이 쉽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해법' 징후가 감지되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이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3개 핵심 소재와 관련,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제한을 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영국의 경제전문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것이다.

일본은 군사용이 아닌 민수용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소재에 대해선 대 한국 수출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제재를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FT는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한 조치처럼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를 거래 금지 명단에 올린 것은 아니라고 한 일본의 한 고위 관료의 말을 소개하면서 이번 조치로 인해 글로벌 공급체인을 뒤흔들 수 있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일본 요미우리 신문 보도도 긍정적이다. 한·일 당국자들이 일본 도쿄에서 수출규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때여서 의미 있는 결정이 나오길 바란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10일 무엇보다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제, 일본 정부도 화답해 주기를 바라며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해 총자산 10조원 이상인 국내 대기업 30개사 총수 및 CEO들을 불러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한 자리에서다.

이에 앞서 정부가 9일(현지시간) 세계무역기구(WTO) 상품ㆍ무역 이사회에서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선 건 궤를 같이 한다.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여론전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것이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일본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한국을 노골적으로 겨냥해 이뤄진 조치이며,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보복을 취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일본을 상대로 수출규제 조치 근거에 대한 명확한 해명 및 조치의 조속한 철회를 요청했다. 일본이 주장한 '신뢰 훼손'과 '부적절한 상황'은 현 WTO 규정상 조치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아울러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양국 기업뿐 아니라 전세계 전자 제품 시장에도 부정적 효과를 끼칠 것임을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우호적 반응이 큰 건 고무적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이번 수출규제가 한일 간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날을 세우고 있어 양국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여하튼 어제 청와대 회동에서 한국 경제와 산업 현안이 두루 논의된 만큼 우리의 취약성이 확인되는 자리일 수 있다. '부품·소재산업 국산화'라는 과제에 대한 해결 방안, 국제적 분업화 등을 통해 한국 경제의 기본이 탄탄하고 산업구조가 제대로 경쟁력을 갖추는 기회로 삼길 기대한다. 감정적 대응만하다보면 더 큰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 크게 봐서 약점 많은 한국 경제와 산업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일본도 외신 보도대로 이쯤해서 규제 철회를 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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