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로 말하기
박남희


한 낮을 뜨겁게 태우던 저녁 강이
해에게 말하듯
불이 물에게, 물이 불에게 작별인사할 때는
물같이도 불같이도 말하지 말기
꼭 돌멩이처럼만 말하기

바람을 버리고 떠나는 쓸쓸한 계절을 향해
작별인사 하는 법을 몰라 눈물이 날 때
말하지 않아도 단단한 말,
듣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말
꼭 돌멩이처럼 말하기

돌멩이는 몸 전체가 입이라서
하루 종일 떠들어댈 것 같지만
입 하나 있는 것이, 그것도 벙어리라서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하고 다만
무겁게 안으로만 말을 한다는데,

사랑아, 네가 나에게 마지막 말을 할 때는
그립고 보고 싶어
자꾸만 목이 메여와도

꼭,
돌멩이처럼만 말하기

아니, 아니,
왈칵, 눈물이 나도
그냥,
돌멩이로 말하기

■출처 : 《시문학》(2014. 3).
▲이 시에는 인간의 '말'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어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이 담겨있다. 인간은 언어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언어로써 사고하고 의사소통과 정보전달을 하며, 인류의 문명은 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불완전한 언어의 사용은 오히려 사람끼리의 소통을 가로막고 진의를 왜곡하거나 축소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공자도 "말로는 뜻을 다 전하지 못한다(言不盡意)."('주역' 계사상전)라고 했는가 하면, 노자는 "성인은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行不言之敎)."('도덕경' 2장)고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가에서는 진리의 본체는 말의 길이 끊어진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있다고 보고,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전달(以心傳心)을 중시하였다. 또한 주희는 "인간에게 있어서 본성이 발동하게 되면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사고하게 되면 언어가 있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언어가 있어도 언어로써 능히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시가 이루어지는 까닭이다."('시경집주'의 서)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말하기'의 모자람, 언어의 한계 속에서도 부단히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여 전달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이 시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돌멩이로 말하기"는 말 이상의 말인 시가 되어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발화된 언어가 아닌 침묵의 언어로서 "말하지 않아도 단단한 말"이며, "듣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말"이다. 또한 "몸 전체가 (마음을 전하는) 입"이지만 "다만 무겁게 안으로만 말을 하는" 말하기이다. 말이 너무도 가벼워진 요즘,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언어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사회에서 "꼭 돌멩이처럼만 말하기"는 아주 오래된 새 어법으로써 우리가 언제나 되새겨야 할 말하기가 아닐까. 그것은 우리 모두 진실한 연인의 마음이 되어 경청해야만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는 참사랑의 말이기도 하리라.  

■박남희 
△1956년 경기 고양시 출생.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신평리에서',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폐차장 근처' 당선으로 등단.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 박사. 
△고려대, 숭실대, 동국대, 추계예대, 고양예고 강사 역임. 
△현재 서울시립대 및 동국대 평생교육원 일산캠퍼스 '시창작 과정' 강사, '창작 21' 편집위원.  
△시집 : '폐차장 근처' '이불속의 쥐' '고장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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