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차세대 반도체의 개발에만 주력하여 차세대 소재공급 기업을 키우지 않으면 오늘처럼 총수가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며 애타게 소재를 구해야 하는 날이 온다.

정부는 반도체 라인 근처도 접근 못하는 허약한 달걀 같은 중소기업, 그래서 자신들의 기술이 어디쯤 와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회사들이 진짜 최첨단 기술에 부응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소재와 공정개발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하는 것을 독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IMF 시절 그룹 전체에서 단 한 명 채용된 과장으로 객기를 부려 간 부서가 에치(Etch)였다. 식각공정을 통해 소재를 미세하게 깎아 내어서 반도체 소자의 물리적 형태를 완성하는 에치부서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이 녹으면 각종 더러운 것들이 드러난다. 에치부서 공정도 이와 같아서 덮이고 열처리된 반도체 칩의 박막 소재들을 녹여내어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이 때 반도체 소자의 불량을 초래하는 거의 모든 흠들이 드러난다. 이전 공정을 맡은 부서에서 발생된 흠이어도 잘 덮여오다가 에치가 끝나야 드러나기 때문에 마치 모든 문제는 에치에서 발생된 듯 보이는 것이다.

설계에서 1nm도 어긋나면 안 되는 공정, 한 번 깎아내고 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공정에 사용되는 것이 불화수소(HF)가스다. 기회가 단 한 번뿐이니 엔지니어의 신경이 항상 곤두서 있고, 순수한 가스가 아니면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단순한 HF 가스가 아니고, CHF3, CH2F2, CF4, C2F6, C4F8 등 다양한 불화물 가스들을 섞어 사용하기에 모든 가스는 완벽하게 동일한 초고순도를 유지해야 한다.

고순도 불산계 가스가 아니면 평소에도 공정결과에 책임을 많이 져야하는 에치엔지니어가 사용할 이유가 없다.

반도체 소자의 모양을 만들 기회가 단 한 번 밖에 없기에 성격마저 버리게 되는 에치공정 엔지니어에 반해 재공정이 가능한 포토엔지니어는 상대적으로 공정이 잘못되었을 때 멋스럽게도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회로 패턴의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에치공정에서 깎아버리기 전이라면 용제로 패턴을 녹이고 다시 해주면 되니까.

하지만 엔지니어 특유의 감까지 동원해 외계인 UFO 수준으로 자신의 광학장비를 정렬해 놓았는데, 이 장비로 노광시킨 패턴을 만들 포토레지스트의 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거나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성격 좋은 포토엔지니어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수출규제를 하는 3대 품목 중 두 가지 소재와 관련된 사연이다. 폴리이미드에 불소를 첨가하여 투명도를 높인 불화 폴리이미드의 공급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다.

앞의 두 소재와 불화 폴리이미드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소재는 반도체 생산 공장인 팹 안에서 쓰이는 소재이고, 불화 폴리이미드는 팹 밖에서 거래되고 사용되는 소재라는 점이다.

너무 비약이 심한 분류가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앞의 두 소재는 수조원의 반도체 장비가 없으면 좋은 지 나쁜 지 알아보는 최소한의 테스트도 불가능한 소재라는 특이성이 있고, 불화 폴리이미드는 이미 많은 디스플레이 소재에 적용되어 팹 밖에서도 충분히 품질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날치가 먼저냐, 날치 알이 먼저냐.’ 한번 생각해 보자. 온 바다에 참치, 삼치, 꽁치, 멸치가 가득한데 물 위로 날아오르는 날치만 없었다.

이 날치가 생겨나려면 어떤 종류의 알이든 날치의 특성을 나타내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꽁치나 멸치가 갑자기 날치로 변해서 날치 알을 낳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알이든 날치의 특성을 갖게 되는 유전자를 갖게 되면 날치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달걀이 닭보다 먼저다" 라고 2006년 노팅엄대 진화유전학 존 브룩필드 교수와 런던 킹스컬리지 데이빗 파피누 교수가 주장한 바 있다.

어떤 새가 갑자기 변하여 닭이 되고 그 닭이 달걀을 낳은 것이 아니라 어떤 알 안에 닭의 특성을 가진 유전자가 생겨나서 닭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

생겨날 때부터 대기업인 대기업은 없으니, 대기업이 알에서 태어났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고, 정부에서도 무작정 현 상황의 책임을 대기업에게 떠넘길 게 아니라 지금 어떻게 하면 새로운 알들을 부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힘을 가진 정부와 대기업이 현 상황을 최대한 빨리 극복할 방법은 예를 들자면 테스트조차 허락되지 않는 보수적인 반도체 대기업의 연구소, 거기 돌아다니는 테스트 롯드, 한 카세트 스물 다섯 장 중 한 장을 중소기업의 소재, 중소기업의 장비, 중소기업의 공정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분야는 무작정 장비나 소재를 개발할 수 없어 전 세계 반도체 대기업들과 전문가들이모여 국제반도체기술로드맵 (ITRS : International Technology Roadmap for Semiconductors)을 지속적으로 관리하여 소자 개발과 장비 개발의 가늠자로 삼는다.

이런 반도체기술로드맵의 밑바닥에는 로드맵이 제시한 범위 안에서의 무한하고 정정당당한 기술개발 경쟁과 수요공급법칙에 의존하는 국제간 자유무역이라는 암묵적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일본의 반도체 관련 주요 소재 수출규제사태를 보고서야 깨닫게 됐다. 엔지니어로서 참 순진했다 싶다.

자유를 잃기 전에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했던가. 반도체 분야에서의 무한경쟁, 공정거래의 신뢰를 일본이 깬 것은 정당한 전 세계 반도체 기술 개발의 틀을 뒤틀어 놓은 것이다.

신뢰를 잃은 것이 얼마나 많이 잃은 것인지 알게 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본다. 이제라도 일본은 국제간 신뢰를 깨는 비상식적인 일을 거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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