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미국 대상 국제 여론전 통해 '일본 모순' 공론화
외교 교섭 강화 속 日 화이트리스트 제외 대응도 착실 준비

▲ 정부가 일본의 대(對)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우리정부의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출장 결과에 대해 언론에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정부가 일본의 대(對)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이는 WTO와 미국을 상대로 한 1차 국제여론전에서 일본측의 궁색한 입장을 드러냈다는 자체 평가에 기초로 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를 강행할 경우 일본의 WTO 협정 위반 범위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WTO 제소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지난 26일 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하고 귀국하는 길에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언론브리핑을 통해 "WTO 회원국의 비공식 지지 의사를 받았다"고 소개한 뒤 "한국이 편한 날짜에 WTO 제소에 나설 것이다. 열심히 칼을 갈고 있다"고 말했다.

WTO 첫 제소 절차는 '양자협의 요청서(request for consultation)'를 상대국인 일본에 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부는 제소장 역할을 하는 양자협의 요청서가 제소범위와 성격을 한번 규정하면 수정하기가 쉽지 않는 만큼 총력을 다해 양자협의 요청서 작성에 나설 계획이다.

외교적 해법도 적극 모색 중이다. 일본과 접촉이 가능한 다자회담이 활용될 전망이다. 다음달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장관급 회담이 성사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한일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교적 해법도 강구할 계획이다. 지난 26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중국 정저우(鄭州)에서 진행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27차 협상에서도 일본 수출규제 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

현재 국제 통상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다자무대인 WTO와 한일 간에 가장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제통상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정부의 설득전도 한 단계 마무리된 상태다. 산업부는 무엇보다 김승호 실장의 WTO 일반이사회 참석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미국 방문으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옹색한 입장이 드러났다고 자평했다.

산업부는 국제여론전에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자유무역에 관한 WTO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과 미중 무역문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경제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나름 부각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1일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등 3대 품목에 관한 수출규제 조치 발표후 직접적 맞대응보다는 국제 자유무역의 가장 큰 수혜국중 하나인 일본의 이율배반적 행태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국제 여론전을 펼쳐왔다.

일본은 자국 조치가 안보 차원에서 이뤄진 수출관리라고 강변했지만 국제사회의 시각에는 한국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는 일본의 옹색한 입장을 확연히 드러냈다는 판단이다. 미국에선 유명희 본부장의 방미에 즈음해 미국 IT 관련 6개 단체들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일 정부에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가 가시화함에 따라 국내 기업 대상 설명회를 갖는 등 내부에서 실무적 대비에도 나서기로 했다. 산업부는 다음달 2일 일본의 각의(국무회의) 결정에 대비해 오는 29일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20개 업종을 상대로 수출규제에 대한 업계 설명회를 갖고 지역 순회 설명회도 차례로 개최할 예정이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우선 일본 수출기업이 일본 정부의 허가를 얻기 위한 서류를 내야 하는데 한국측 수입기업에도 최종 사용자와 용도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으므로 수입 신청서류를 신경 써 작성해야 한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더라도 일본 경제산업성이 포괄허가 혜택을 주는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정기업(CP)을 거래대상으로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수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알려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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