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은행권도 지원대책 속속 내놔

▲ 당정청 고위당국자 회의 모습. 자료사진 연합뉴스 제공
◇ 오늘 오후 고위당정청 대책회의

우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4일 오후 국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가인 백색국가 명단)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고위당정청협의회를 연다.

지난 2일 일본의 2차 경제보복이 현실화한 이후 처음으로 당정청 고위급 인사들이 모여 대책을 협의하는 자리다.

당정청은 이날 회의에서 일본의 이번 조치에 따른 여파를 분석하는 동시에 일본 수입에 의존해온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촉진을 위한 정책·예산·입법 지원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전망이다.

특히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폐기 문제를 비롯해 '맞대응 방안'이 다뤄질지도 주목된다.

당에서는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조정식 정책위의장, 정세균 소재부품산업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최재성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한다.

정부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나온다. 청와대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이호승 경제수석 등이 자리한다.


◇ 금융당국 3조8천억원 지원 프로그램 신설…수입 다변화 2조원 포함
정책금융기관 대출·보증 1년간 전액 만기 연장

금융당국도 화이트 리스트 한국 배제 조치에 따른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규 유동성 공급 등 즉각 지원에 착수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최종구 위원장 주재로 금융감독원, 정책금융기관, 시중은행 등과 '일본 수출 규제 대응 간담회'를 열고 기업 지원 방안을 확정했다.

참석 기관들은 금융 부문 비상대응 체계에 따라 피해 기업에 대출 만기 연장, 신규 유동성 공급 등 신속하고 충분한 지원을 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규제 대상 품목을 수입 또는 구매한 기업을 포함해 거래 관계와 피해 사실이 확인된 기업이다.

당국은 피해기업 전용 지원 프로그램을 총 3조8천억원 규모로 신설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은 기업의 수입 다변화를 위해 2조원을 지원한다.

신규 유동성 공급 확대 대상이 중소·중견기업이지만, 수입 다변화에는 예외적으로 대기업도 포함한다. 수출규제 품목을 수입하는 기업이 겪을 수입 차질을 고려해 해외기업 신용조사 보고서 제공 등을 지원한다.

무역보험공사는 수입보험 한도 우대와 보험료 할인에 나서고, 수출입은행은 수입 규제 품목을 수입하려는 기업에 대해 수입 자금 대출한도를 기존 80%에서 90%까지 늘려준다. 또 대기업에 0.2%포인트, 중소기업에 0.5%포인트 대출 금리를 인하해줄 계획이다.

당국은 신규 지원 외에 특별운영자금이나 경영안정 자금 등 기존 프로그램으로도 2조9천억원 규모로 피해기업을 집중 지원한다.

수출 규제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이미 가동 중인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 지원프로그램도 신속하게 가동할 계획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하반기 공급 여력은 29조원이다.

이번 조치로 피해가 예상되는 국내 기업들에 대해 정책금융기관의 대출·보증을 일괄적으로 1년간 전액 만기 연장한다. 만기 연장 대상 기업에는 중소·중견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포함된다.

다만, 이번 수출 규제 이전에 이미 여신 지원이 어려워진 부실기업이나 휴·폐업한 기업은 일괄 만기 연장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된다.

시중은행들도 대출 만기 연장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피해 기업들을 지원해야 수익성이나 자산 건전성 관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만기 연장에 동참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은 또 자체적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피해 기업에 신규 자금을 공급하고 금리 감면 혜택을 줄 계획이다.

당국은 국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설비투자·연구개발(R&D)·인수합병(M&A)도 지원한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품목을 수입하는 기업과 사업 재편·다각화, 창업 등을 통해 신규 진출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대상이다.

먼저 신용보증기금(1조원)과 기술보증기금(5천억원)을 통해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는 중소기업에 1조5천억원 규모의 보증을 새롭게 지원하기로 했다.

또 관계기관과 함께 '해외 M&A 인수금융 협의체'를 설치해 핵심기술 획득을 위한 기업 M&A 성사를 돕는다. M&A 지원 여력은 산업은행의 사업경쟁력 강화 지원자금을 포함해 2조5천억원 수준이다.

아울러 이미 편성돼있는 산업구조 고도화 지원프로그램 같은 시설자금(16조원)을 지원하고, 대기업 출자 자금 등을 바탕으로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5천억원 규모의 펀드도 운용한다.

당국은 특히 정책금융기관 등이 만기 연장과 자금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고의나 중대한 과실만 없다면 담당자에게 지원 상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최종구 위원장은 "당장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운영자금을 최대한 공급하고 장기적으로 소재·부품 분야의 자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연구개발, 원천 기술 보유 회사 M&A 등에 필요한 자금을 필요한 만큼 공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중은행들도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의 영향을 받을 기업과 해당 기업에 대한 여신 현황 등을 파악하고, 금리 인하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당국의 지원 방안과 연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지원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 은행권도 수조원대 신규 자금 지원…대출 만기 연장하고 금리도 깎아줘

일본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 제외 조치로 피해를 보는 기업을 돕는 데 시중은행들도 동참한다.

일본의 규제로 당장 수입선이 끊기는 등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해 비가 올 때 우산을 뺏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일본 수출 규제로 피해가 예상되는 중소·중견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대출금리를 최대 2.0%포인트(p) 깎아주는 등 금융지원책을 마련, 이르면 5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은행들은 한결같이 "일본 수출 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을 돕는 특별 금융지원을 시행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공통적인 지원 카드는 기존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금리를 우대해주는 것이다. 경영안정 자금을 지원해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 관련 산업 차원의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곳도 있다.


우리은행은 총 3조원 상당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대표적인 수출규제 피해산업의 협력사를 지원하기 위해 1조원 규모의 상생 대출을 지원한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 특별출연해 이달 중 5천억원, 이후 2020년까지 1조5천억원 규모의 여신을 지원한다.

피해기업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당장 5일부터 '경영안정 특별지원' 자금 500억원을 푼다.

피해가 예상되는 소재·부품기업에 최대 1.2%포인트 대출금리를 우대하고, 핵심 수수료를 전액 면제해주는 특화상품도 준비 중이다.

'일본 수출규제 금융애로 전담 태스크포스'를 운영해 종합적으로 피해 기업을 지원한다.


신한은행은 이번 수출 규제로 자금 운용에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업체당 10억원까지 모두 1조원 규모의 신규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분할 상환도 유예하고 신규 여신이나 연장 여신에 대해서 금리를 최고 1%포인트 감면해준다.

'일본 수출 규제 금융애로 신고센터'를 설치해 피해 기업에 관련 정부 지원 정책 등 각종 정보와 재무 컨설팅을 제공한다.

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소재·부품 기업 여신지원 전문 심사팀도 새로 운영한다. 해당 기업이 자금 지원을 신청하면 당일 심사를 원칙으로 즉각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NH농협은행도 5일부터 일본산 소재·부품 수입 기업에 할부상환금 납입을 최대 12개월 유예해준다.

해당 기업은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상환기한을 연기할 수 있도록 했고, 신규 대출이나 상환 연기 시 금리를 0.3%포인트 낮춰주기로 했다.

일본의 과녁이 농식품으로 확대될 것에 대비해 농가에도 금융지원을 한다. 수출액의 99%가 일본에서 나오는 파프리카 재배 농가가 우선 고려 대상이다.


KB국민은행도 피해 중소기업을 위해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한다. 한도는 정해두지 않고 해당 기업이 위기를 넘기는 데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기로 했다.

또 기업에 환율 우대와 외국환 관련 수수료 감면·면제 혜택을 주고, '수출 규제 피해 기업 금융지원 특별대책반'도 운영한다.

이와 함께 일본 규제의 영향이 큰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신설, 특별우대 금리로 신규 자금을 긴급 지원할 계획이며 추가 지원방안도 모색 중이다. 일시적으로 유동성 부족에 빠진 기업에 대해서는 기존의 기업신용개선프로그램을 통해 회생을 지원하기로 했다.


KEB하나은행은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로 피해를 보는 기업, 금융보복으로 인한 피해 기업, 불매운동으로 인한 피해기업, 대체품목 생산기업 등으로 세분해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규제 대체 품목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에 시설자금을 지원하고, 글로벌 소재·부품 기업을 대상으로 인수합병(M&A)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시중 은행장들, 금융공기업 기관장들이 모여 간담회를 열고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시중은행의 신속한 이번 대처는 금융당국의 즉각 지원과 발맞춘 것으로, 은행의 일반적인 대응 문법은 아니다.

통상 수익성과 건전성을 중시하는 은행의 속성상 이번처럼 대내외 악재가 불거져 경기 불확실성이 예상되는 때에는 대출을 줄이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게 관행이었다.

구조조정 등 위기 국면에서 은행들이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성토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일본의 부당함에 대한 국민 차원의 공분이 이어지고 있고 정부 역시 단호한 대응을 천명한 만큼, 은행들도 재빠르게 호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태가 구조적인 문제로 불거진 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아니라 일시적인 외부 충격이란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시중의 한 은행장은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가적인 일이니 우리도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인 동참 의지를 밝혔다.

다른 은행장도 "기업들의 애로를 면밀하게 파악하라고 했다"며 "특정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측면의 지원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경기 둔화, 미중 무역 분쟁 등과 맞물려 전반적인 경제가 위축돼 금리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은행의 수신·대출 금리가 모두 떨어져 이자 등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대내외 변수 등 시장 흐름을 주시하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등 전략을 정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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