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는 PR/불산류/불화폴리이미드 3대 품목에 집중을 해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과장 초년병 시절에 E-Beam 노광공정의 대가인 칼텍의 콘스탄티노스 지아피스 (Konstantinos Giapis)교수 에스코트를 맡은 적이 있다.

공식 일정 2박 3일을 포함한 4박 5일 동안 법인카드와 대형차를 지급 받아 당시로서는 최고의 예우를 하며 3회의 세미나를 도왔다.

세 번째 세미나를 위해 호텔에서 픽업 후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가 조심스럽게 제안해 왔다. “헤이, 종훈 소원이 한 가지 있는데 회사에 얘기해 줄래?” 그가 내게 말한 소원은 이랬다.

세미나 사례는 한 푼도 받지 않겠다. (당시 과장 연봉의 절반이 좀 넘었다.) 여느 엔지니어와 마찬가지로 옷을 갈아입고 연구소 옐로우베이(노광을 담당하는 공정부서)에서 시작하여 뚜벅뚜벅 조용히 전체 공정라인을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 돌아보고 라인을 나오고 싶다. 일정한 속도로 걷는 것을 멈추지도 않겠다. 어떤 촬영이나 메모도 않겠다.

현재는 주로 후공정 위주로 반도체 대기업마다 넓은 윈도우 너머로 반도체 공정의 일부나마 구경할 수 있는 견학라인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교수가 부탁한 것은 그런 견학이 아니라 실제 공정이 이루어지는 라인을 한 번만 거닐고 싶다는 것이었다.

칼텍 대가의 부탁이니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기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모해?” 세미나 초청자인 이사님이 지나다 물으시기에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더니 “이봐, 그 분이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몰라?” 초짜 과장이 그 깊은 이유를 알 턱이 있겠는가.

“세계적인 대가라도 단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곳이 우리 라인이야, 감이 안 와? MIT건 칼텍이건 상관없이 우리 반도체 라인이 세계 최고라고 저 사람들도 구경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인 곳이야, 가서 정중히 말씀 드려. 세미나 사례비 잘 챙겨드릴 테니 그냥 출국하시라고”

20년 이상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 보유국가다. 반도체 관련 학회에 나가서 우리가 ‘우와 MIT’, ‘우와 INTEL’ 이라고 스치는 사람의 이름표를 보는 동안 그들이 ‘헉.. R.O.K’하며 바라본 지도 오래 됐다. 일본에서 EUV 감광제 안 준다고 그 위상이 흔들릴 리 있겠는가?

하지만 일본에서 특정 ‘소재’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소재산업, 나아가 소재·부품·장비산업을 육성해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면서도 일면 순진한 생각이다.

반도체 분야만큼 새로운 소재 사용에 보수적인 분야도 없다.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소재도 재료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단순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반도체 소자의 신호를 전달하는 금속선 소재가 텅스텐, 알루미늄, 구리가 사용되어져 왔고, 최근에야 코발트를 섞어 볼까?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절연체로 쓰이는 소재 역시 산화실리콘, 산화알루미늄 등이 기본이고, 낮은 유전상수를 갖는 탄화수소 화합물들이 적용되고 있다. 끝말잇기 필살기용 ‘스트론튬’, ‘우라늄’, ‘세슘’ 같은 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이는 재료들은 반도체 라인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자, 여기 환상적으로 좋은 물성을 가진 신소재가 있다. 정말 완벽하게 뛰어난 물성을 가지고 있는데 언제쯤 반도체 소자에 적용될까? 보통 10년이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물성과 안정성과 재현성을 가지고 있을 때만. 이 환상적인 신소재는 대다수 반도체 회사의 선행연구소와 반도체 회사들 간 출자로 이루어진 공동연구 연구소에서 사용 가능성이 시험되고, 반도체 소자에 적용할 수 있다고 확인되면 비로소 반도체 기술 로드맵에 오르게 된다.

그러면 반도체 장비회사들과 소재회사에서 수년 후를 보고 양산공정 개발에 돌입하게 되고, 다시 반도체 회사의 연구소와 양산라인에 새로 개발된 장비를 사용한 공정개발로 양산 제품에 적용하게 된다.

실험실에서 양산공정 적용까지 걸리는 시간은 신약 개발 후 1,2,3차 임상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에 맞먹는다. 투입되는 자본은 적게 잡아서 신약의 10배를 쉽게 넘는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개발되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가 과연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산물일까?

반도체 소재의 핵심은 ‘순도’다. 얼마나 순수한지 수시로 분석이 되어야 하고, 이런 분석에 사용되는 분석장비 또한 미세한 불순물에도 신호를 내도록 관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회사마다 반도체 소재 관련 기술의 문제는 소재 사용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은 반도체 관련 소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해당 소재를 개발하는 업체의 인증과 분석능력, 그리고 이것을 관리할 인력의 부재에 기인한다.

소재가 얼마나 순수한지, 얼마나 일정한 성분을 보장할 수 있는지 알아야 생산할 것 아닌가! 실은 이번 일본 수출규제 상황에서 이런 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책이 동시에 노출되었다. 인증을 받다가 회사가 도산할 수도 있는 수 년의 기간을 반도체 대기업에서 검증해주고 구매결정을 내렸다.

소재를 쓰려면 ‘KS, ISO, GMP, GE, IEC, TUV 인증 있어요?’ 요구하던 그 대기업에서. 분석도 국책 연구소보다 좋은 장비를 가진 반도체 회사에서 한 것. 그래서 불산류 국산화가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해졌다.

상대적으로 초고순도를 요구하지 않는 폴리이미드의 경우도 소재의 순도에 대한 보장이 핵심이다. 통상 이런 보장은 최종 생산품의 물성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재료 사용 단계에서부터 각종 인증들로 관리된다.

수출할 때는 해당 인증이 없으면 판매는커녕 세관 보세창고에서 출고가 되지 않는다. 인력이 많은 대기업에서야 인증관리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코스닥 상장업체에서도 영업직 열 명 두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영어로 된 수천 쪽 인증문서는 물론이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국제 인증관리에는 담당 인력 한 명도 두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데 수출규제가 될 때마다, 납품 받을 때마다 대기업에서 이런 관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라서 가장 먼저 기업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국책연구기관 분석센터의 분석료를 국가에서 보조해 주는 일이다.

필요하다면 장비 사용 방법도 교육시켜야 중소기업에서 자체 분석 장비를 소유할 엄두를 낼 수 있다. 지금처럼 주사/투과전자현미경 몇 시간 쓰고 2~300만원 사용료가 나오면 정말 큰 맘 먹고 써야 한다.

분석료와 장비교육비 지원은 중소기업을 과제비 오남용 걱정 없이 지원하고, 분석센터 인건비 증가를 억제하면서 분석실무 고급인력을 늘리는 방법이다.

현 상황에서 전산인력이나 하드웨어 설계 기술의 부족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간 관련 분야의 인력 수급 사이클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기술경쟁력 있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부품소재장비 분야를 감당할 엔지니어들을 키울 토양을 구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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