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보이기만 했더라도 박근혜 정권은 온전했을 것이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 앞 맹골수로를 항해중이던 여객선 세월호가 해상 사고로 전복 위기에 처한 뒤 가용 군 자산과 민간 구조자원으로 기민하게 대응하는 시늉만이라도 했다면 국민의 응어리는 풀렸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초기 언론 대응은 전원 구조였다. 이를 받아 쓴 언론들도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잠시 후 드러날 소설 같은 거짓말을 현장 확인도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현장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면 군, 우리를 돕고 있는 미군, 인근 목포 현대중공업 선박이라도 동원해서 세월호를 구조했어야 했다. 언론은 침몰하는 세월호를 실시간 중계하고, 보도하고 있는 동안 대통령은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부재중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의 불통 미스터리는 30년동안 밀봉된 상태로 국가기록원에 굳게 봉인돼 있다.

참다못한 국민들은 그 진실을 밝히라고 촛불을 하나 둘 켰고, 그 촛불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당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60여의 국회의원들은 야당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나섰다. 촛불과 국회가 손을 잡고 박근혜 정권을 하차 시킨 것이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국민이 분노하지 않고 촛불로 저항하지 않았다면 박근혜 정권은 임기를 마치고 대권을 연장하는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은 진실을 밝히려고 촛불을 들었다. 그 진실의 길에 남녀노소 여야가 따로 없었다.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도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광화문에 기웃거리는 걸 본적이 있다. 국민들이 보다 못해 나섰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지만 자생한 극우 집단들의 광란에 한 풀이라도 하듯 그들 뒤편에 숨어있었다.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넘쳐나는 온갖 정보들이 흘러다니고 누군가는 자신만 알고 있는 내용들을 올린다. 그게 극우건 극좌 건 거름망없이 그대로 올려진다. 올려진 글들이 자기 생각과 맞다고 하는 쪽에 '댓글'도 달고 '좋아요'도 누르면서 한풀이를 하는 세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과 생각을 전할만큼 SNS는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손쉽게 세상속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정광훈 대표회장이라는 분은 문재인 정권 하야를 서슴없이 외치고 있고,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라는 사람이 "아베 수상님 사죄드립니다"라고 SNS에 올리는 글이나 동영상도 누구든지 보고 찬반양론이 분분한 대한민국이다. 그런 대한민국을 두고 야당은 국회고, 국회 밖이고 입만열면 독재국가라 한다. 그들이 독재국가 시절에 살았던 때는 독재의 '독' 자만 입밖에 내도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잡혀갔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억울한 사연을 치유하기 위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고 그 과정에서 밝혀진 일들이다.

국회는 필요한 법을 만들거나 필요 없는 법을 폐기하는 입법기관이다. 영어로 로메이커(Lawmaker),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지금이 독재국가라면 법을 고쳐서 그 독재의 법을 폐기하면 될 일이다. 법 만들고 폐기하는 일은 내 팽개치고 거리 모리배들이나 하는 말들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밖에서 외치고 선동하는 건 스스로 나는 무늬만 국회의원이라고 고백하는 거나 다름없다.

또 있다. 남녀노소가 바르고 있는 화장품을 제조하는 한국콜마 회장이 직원들을 상대로 한 매월 있는 회장과의 만남에서 SNS에서 떠도는 일본 아베 정권을 찬양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직원들 교육용으로 틀었다고 한다. 그 동영상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對)일본 대응을 비난하면서 “아베는 문재인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라는 등의 비속어와 여성 비하 발언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콜마는 화장품·의약품·건강기능식품 제조자 개발생산(ODM) 전문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은 1조3600억원(연결 기준)으로 화장품 ODM 기업으로 세계 1위다. 한국 콜마는 일본 콜마와 합작해서 세운 뒤 국내외 화장품 제조업체, 특위 위탁생산업체로는 세계적인 회사이다. 이런 회사를 이끌고 있는 회장이라는 분이 직원들 교육용으로 SNS상에 떠돌고 있는 동영상을 강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가 그 동영상에 공감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사라는 사람이 멀쩡한 대통령 하야 설교나 하고, 세계를 무대로 경쟁 화장품과 품질 경쟁을 독려해야 할 회장이 아베 정권을 찬양하는 동영상을 직원 교육에 활용하고, 엄마부대라는 임의단체를 만들어 엄마들을 망신시키는 그 SNS를 오늘에 있게 한 건 반도체 강국을 만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다.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일본회사의 한국인 근로자 임금문제 판결에 불만을 품고 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를 만드는 필수 소재를 무기로 일본이 수출규제와 심사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동맹이라고 하는 한국을 제외시킨데 격분한, 스마트폰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국민들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말에 '너나 잘해라'라는 표현이 있다. 지금 '너나 잘해라'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는 국민뿐인 것 같다. 한일관계를 비교적 냉정하게 보고 있는 한 일본 전문 학자는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 "일본이 한반도에서 끼친 가장 큰 해악은 한국을 오늘까지 분열하도록 만든 일이다"라는 지적처럼 불매운동은 국민 뇌리에 '이건 아니다'라는 또다른 촛불혁명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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