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

▲ 윤동주 시인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출처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정음사(2017).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 조지훈이 1960년 2월에 썼던 '지조론'의 서두이다. 이 시론(時論)에서 그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국(政局) 가운데 안정을 희구하던 국민의 호소를 뒤로 한 채 개인의 명리(名利)만을 쫓아 위선(僞善)과 교지(狡智)로 변절하는 정치가들을 통렬히 꾸짖었다.

위 시에서 윤동주 시인은 "지조 높은 개는 /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라고 얘기한다. 개더러 왜 지조가 높다고 하는가? 개는 어둠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인은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라고 하면서 '어둠 속에' '백골'처럼 무력하게 삭아가는('풍화작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어둠 속에서 짖어대는 개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때 시인은 어둠 가운데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비해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 개는 '지조'가 높은 거라고 느끼게 된다. 또한 그 '지조 높은 개'가 짖는 '어둠'은 바로 '나'라고 생각하며 '쫓기우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대의 어둠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라면 어둠과 한가지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시에는 어둠의 속박에서 오는 무력감을 떨치고 일어나 맞서 싸우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희구(希求)가 들어있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가자'라고 하는 동사의 반복을 통해 '지조 높게' 행동하고자 하는 결의를 다진다. 그러므로 시인이 가자고 하는, 가고자 했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이란 독립투쟁이라는 행동을 통해 해방을 이룬 조국의 자유로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이 시를 쓴 다음 다음해에 독립운동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2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1945년 2월 16일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다. 그가 그토록 희구하던 조국의 해방을 불과 반 년 앞둔 날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인은 어디에 있는가? 윤동주 시인은 이 시의 예언처럼 고향 북간도에 돌아가 백골로 누워 있다. 하지만 그곳은 그가 그토록 가고자 염원했던 해방 조국의 '또 다른 고향'이 아니다. 그곳은 언제부터인가 중국 땅이 되어버린 '또 다른 타향'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향에 방치하고 있다. 게다가 2019년 올해엔 교육부가 초등학교 6학년 국정 도덕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을 '재외 동포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일까지 생겼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어찌해야 이 일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시인의 고향 간도는 그가 태어나기 전인 1909년,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제가 청나라와 맺은 간도협약에 의해 청나라의 땅이 되었다. 그리고 광복 후 1948년 미군정 하에서 제정된 헌법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함"이라는 글귀에 의해 우리의 강역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강토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한다."라는 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의 전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한의 고유한 판도, 거기에는 한민족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치는 내내 다스려온 땅인 요동과 요서,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 자라면서 시혼(詩魂)을 키운 만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던 우리의 한강토(韓疆土)가 한반도(韓半島)로 축소되고, 그마저도 두 동강이 난 채로 불구가 되어 급기야 우리의 민족시인을 재외 동포시인이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시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현실에 대한 무능으로 한 순결한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역사에 대한 무지로 여전히 그를 '쫓기우는 사람'으로 방치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제라도 우리는 '지조 높은 개'가 되어 이 현실과 역사의 '어둠'을 짖어야 한다. 윤동주 시인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그처럼 '밤을 새워' '나'와 내 '백골'과 '혼'을 꾸짖어야 한다. 나는 지금 역사의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제 고향에 누워서도 '쫓기우고' 있는 시인의 혼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윤동주와 조지훈, 1945년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의 대전제로 일본의 사죄와 양보를 들었던 두 시인이 살아 있었더라면 2019년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 대하여 무어라고 말하였을까?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개인청구권 인정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해 친일과 반일 논쟁으로 우리끼리 물어뜯으며 날밤을 새우고 있는 오늘, 두 시인이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우리의 이 현실에 대해 무어라고 말을 할까?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고귀한 투쟁"이라지만, 두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 비해 훨씬 복잡다단해진 국제질서와 국가현실이 선뜻 한쪽의 논리만을 확집(確執)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따라서 필자는 '지조론'에 나온 조지훈 시인의 다음 글로 그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과 명리(名利)를 위한 부동(浮動)은 무지조(無志操)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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